[마라톤]서울국제마라톤 여자우승 이은정

  • 입력 2004년 3월 22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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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열린 2004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한국기록에 6초 뒤지는 2시간26분17초로 우승한 이은정. 마라토너로선 드물게 안경을 쓰고 달리는 그는 이제 아테네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논산=안철민기자
지난 14일 열린 2004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한국기록에 6초 뒤지는 2시간26분17초로 우승한 이은정. 마라토너로선 드물게 안경을 쓰고 달리는 그는 이제 아테네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논산=안철민기자
안경 뒤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 해맑은 웃음, 수줍은 말투…. 머리끈을 풀어 헤친 그는 마라토너라기보다는 ‘꿈 많은 처녀’였다.

2004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5회 동아마라톤 여자부에서 2시간26분17초로 우승한 이은정(23·충남도청). 7년 묵은 한국기록(2시간26분12)을 단 6초차로 경신 못했지만 얼굴 표정은 밝았다. 그는 우승 후 아직 서산 집에 들르지도 못했다. 28일 인천마라톤에 출전하는 팀 선배 최민정(26)과 후배 정혜진(20)를 돕기 위해서라고. 지난 16일 그를 논산공설운동장 내 팀 숙소에서 만났다.

○우승은 종이학의 힘?

이은정의 방을 들어서는 순간 눈에 띄는 게 2개 있었다. 종이학과 소형 공룡 모형.

남들은 사랑을 고백하려고 접는 종이학을 이은정은 서울국제마라톤을 3주 남겨놓고부터 접기 시작했다. “훈련 외의 시간에 할 일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대회에 임하는 자세가 1000마리의 종이학을 접어 사랑을 고백하는 것만큼이나 간절했다는 얘기일까. 몇 개나 접었냐고 묻자 “아직 세어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눈대중으로 1000개는 넘어보였다.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한 뒤엔 소형 공룡 모형을 사서 조립하고 있다. 가끔씩 구슬공예도 한단다.

“뭘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종이학을 접다보면 마음도 안정되고 딴 생각을 하지 않게 되거든요.”

○안경낀 마라토너

안경 낀 마라토너는 드물다. 선글라스를 끼고 달리는 선수는 많아도 눈이 나빠 안경을 쓴 선수를 본 것은 그가 처음인 것 같다. 안경은 웬지 스포츠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기에 안경을 쓴 채 유력한 우승후보이던 중국의 장수징, 에티오피아의 툴라와 레이스하던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은정은 어려서부터 눈이 좋지 않았다. 책이나 TV와 친한 것도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안경 때문에 불편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어요. 안개 낀 날이나 비 오는 날엔 안경을 벗고 달려요. 렌즈에 물이 묻어 앞이 부옇게 돼도 닦을 수 없잖아요. 머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괜찮아요.”

이은정의 시력은 양쪽 모두 0.2. 요즘 운동선수에게 라식 수술이 인기인데 그는 왜 아직 안했을까.

“부모님들이 반대해요.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 안 됐다나요. 저도 아직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단거리에서 100분의 1초를 앞당기기 위해 온간 스포츠과학을 동원하는 요즘 세상에 땀이 흘러 눈에 들어가거나 렌즈가 흐려 보이면 아무래도 레이스에 지장을 줄 것 같다.

“기록 단축에 도움이 된다면 라식수술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네요.”

○“바쁘다 바빠… 스타됐어요”

이은정은 요즘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바쁘다. 15일엔 대전 도청 광장에서 열린 대대적인 환영행사에 참석했고 거의 매일 도나 시 관계자들의 환영 식사에 초청받고 있다.

“얼굴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냐”고 물었다. “뛸 때는 머리를 묶지만 평상시에는 머리를 풀고 다녀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더라고요. 만나는 사람마다 진짜 이은정 맞느냐고 해요.”

유의석 감독은 “은정이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번 우승으로 우쭐해 훈련을 등한시 할까 걱정된다”고 한 마디. 그러자 충청도 사투리 가득한 이은정의 대답이 걸작이다. “걱정 마세유∼. 한국 기록을 깨고 세계 유명대회에서 우승할 때까지는 항상 처음 같이 훈련할 거에유∼.” 유 감독은 요즘 이은정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사절하느라 바쁘다.

○아테네올림픽 메달이 첫 목표

이은정의 당초 꿈은 중고교 체육선생님. 그래서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결국 실업팀을 택했다. 서산농공고 2학년까지만 해도 여자 800m와 1500m를 휩쓸었는데 3학년이 된 뒤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원래 경희대 체육과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입학할 때쯤 경희대가 육상부를 해체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실업팀으로 왔어요.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대학은 지금이라도 갈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젠 또 다른 목표가 생겼잖아요. 일단 아테네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게 첫 목표이고 한국 기록도 깨야죠. 보스턴이나 뉴욕 등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에서도 우승하고 싶어요.”

이은정이 있기에 이제 한국 여자마라톤의 앞날에도 희망이 생겼다.

논산=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이은정은 누구?▼

△생년월일:1981년 4월21일

△신체조건:1m64, 48kg △혈액형:A형

△출신교:서산산성초-성연중-서산농공고 △취미:종이학 접기, 음악감상, 영화감상

△가족관계:이대형(53) 김동숙씨(51)의 3녀 중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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