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1월25일 '남극 강풍의 방해가 시작되다'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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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정대로라면 남극대륙 패트리어트힐로 출발해야하는 날. 하지만 강풍이 불어 출발일이 26일로 하루 연기됐다. 짐이 늦게 도착한 우리 원정대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새벽부터 박영석 탐험대장이 대원들을 독려한다. 짐을 최대한 줄여보기 위해 썰매에 가득실은 짐을 수십 차례 '풀었다 묶었다'를 반복했다. 밖은 초속 15m가 넘어 블리자드로 분류되는 강풍이 불었지만 대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원정을 계획할 때 예상한 1인당 짐은 150㎏. 올초 북극점 원정 때 워낙 추위와 허기에 시달려 이번 남극점 원정에선 연료와 식량을 좀 더 보강했다. 하지만 원정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박영석 대장은 짐을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간식에서 초콜릿, 사탕, 과자 몇 개씩 빼내"라는 박대장의 말이 나오자 대원들의 입이 삐죽 나왔다. "추운 것은 참겠는데 끊임없이 걸으며 허기를 참는 것은 못하겠더라"고 막내 이현조 대원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쪽은 대장.

5명의 탐험대원이 하루 2L의 휘발유와 1인당 1.4㎏의 식량을 소비하기로 했던 것을 휘발유 1.5L로 0.5L, 식량은 1인당 1.2㎏으로 0.2㎏씩 덜어내기로 했다. 고민 끝에 일부 장비도 포기했다. 그래서 1인당 150㎏이었던 썰매가 130㎏으로 가벼워졌다.

오후 2시30분. 세팅을 끝낸 썰매를 대행사로 보냈다. 이제 남극점을 향해 떠나는 일만 남은 것.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대행사에서 가능성이 많지는 않지만 오후에 비행기가 뜰 수도 있으니 대기하고 있으라는 것.

오후 5시에 연락을 주면 모든 준비를 40분 안에 마치고 대기하라는 얘기다. 남극에서 입을 두터운 우모복에 혹한용 부츠까지 챙겨신고 앉아 기다리길 몇시간.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은 뒤에야 대원들은 두터운 이불같은 옷을 벗고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남극대륙은 인간의 발길을 달가워하지 않는가 보다. 내일도 모래도 기상조건에 따라 비상작전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남극땅에 발을 내딛을 수 있겠지.

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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