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2월 10일 18시 0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제6회 한국실업양궁연맹회장기 실내양궁대회. 남산 만큼 부른 배를 복대로 조이고 여자부 개인전 준결승에 나선 정창숙(30·대구서구청)은 경기전 뱃속의 아기에게 혼잣말을 했다. 아기를 가진 뒤로 정창숙은 사선에서도 늘 아기와 대화를 한다. 서로의 교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아기가 발로 엄마를 차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정창숙은 “엄마 말을 듣고 있구나”하며 배를 쓰다듬는다.
국내 양궁대회의 개막전인 이번 실내양궁대회엔 현 국가대표를 포함해 각 실업팀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출전한 권위있는 대회. 여기서 임신 9개월의 정창숙은 다른 선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후배인 김은령(여주군청)과 맞선 10일의 준결승전. 18m 앞의 표적지를 향해 12발을 쏴 승부가 나는 실내양궁대회는 고도의 집중력과 배짱이 요구되는 경기. 더구나 이날은 TV중계까지 해 선수들의 긴장상태가 평소보다 더 했다.
2엔드(3발이 1엔드)가 끝났을때까지 스코어는 57-56으로 김은령의 리드. 하지만 3엔드 첫발에서 단숨에 승부가 갈렸다. 정창숙이 쏜 화살이 과녁 한가운데를 꿰뚫으며 10점. 반면 김은령은 8점을 쏴 점수가 역전됐다. 마지막 스코어는 115-113. 정창숙은 경기가 끝난 뒤 “3엔드 첫발을 쏘려 할때 갑자기 뱃속의 아기가 꿈틀했다. 빨리 쏘라는 신호같았다. 엉겹결에 쏘고나니 10점짜리였다”며 웃었다.
정창숙은 결승전에서 국가대표로 최고의 기량을 보이고 있는 안세진(대전시청)에게 115-118로 패했다. 하지만 만삭에 가까운 몸으로 준우승한 것도 대단한 일. 임신후 체중이 10㎏ 가까이 늘어난 데다 양궁선수에게 필수적인 체력훈련(웨이트와 서키트트레이닝)을 전혀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순전히 감각만으로 활을 쏴 2위에 오른 것이다.
“집에 있을 때는 자주 발로 차던 아기가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활을 집어들면 신기할 만큼 얌전해져요.”
그는 “아기가 엄마가 양궁선수인 줄 아는 것같다”며 “아기를 가진 뒤 오히려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가 돼 기록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97년부터 4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했던 정창숙은 양궁계에선 알아주는 실력파.
“임신했다고 누워있는 것보다는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출산에도 좋을 것 같았어요. 남편도 흔쾌히 찬성해줬구요. 나중에 아기에게 ‘엄마가 널 뱃속에 넣고 대회에 나가 준우승 했단다’라고 얘기해주면 좋아하겠지요.”
다음달 말 출산예정인 그는 다음주 상무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제16회 전국실내양궁대회에 마지막으로 출전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남자부 결승전에선 상무의 최원종이 인천계양구청의 김경호를 119-118로 누르고 1위에 올랐다.
대전=김상수기자 ss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