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소니오픈]에이징어 마침내 정상에 오르다

  • 입력 2000년 1월 18일 00시 26분


마지막 261번째 샷이 끝났을 때 폴 에이징어(40·미국)는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를 숙였다. ‘페인, 네가 하늘에서 나를 도왔니?’

지난해 10월26일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 페인 스튜어트.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였던 만큼 친구의 불행은 ‘남의 일’일 수 없었다.

17일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알레이GC(파 70)에서 열린 올 시즌 미국PGA투어 개막전인 소니오픈 최종 4라운드. 에이징어의 샷 하나하나는 ‘하늘의 친구’에게 바치는 소중한 것이었다. 하늘에서도 감동했음일까. 에이징어는 버디만 5개를 잡는 완벽한 플레이로 5언더파 65타를 기록해 최종합계 19언더파 261타로 우승했다. 1라운드부터 한번도 선두를 뺏기지 않은 완벽한 승리였고 6년5개월 만의 실로 감격적인 우승이었다.

에이징어는 시상식이 끝난 뒤 “스튜어트가 동료 로버트 프레일리, 밴 애던과 함께 세상을 뜬 날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우승을 스튜어트의 덕으로 돌렸다.

에이징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93년 PGA선수권에서 우승해 첫 메이저타이틀을 딴 뒤 느닷없이 받아든 암 선고. 오른쪽 어깨에 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6년여 세월. 그때 스튜어트가 그의 곁에 함께한 것이다.

암 발병 직전만 해도 에이징어에게는 탄탄대로가 놓여 있었다. 87년 피닉스오픈 등 3승을 챙기며 순식간에 상금랭킹 2위가 됐고 이후 해마다 1승씩을 올리는 파죽지세…. 그러나 93년 PGA선수권 이후 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갔다.

에이징어는 “투병기간의 첫 4년은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중반기 이후 자신감이 생겼고 우승까지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이날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말했다.

통산 12승의 에이징어는 이날 또 하나의 불운을 날려보냈다. 하와이오픈으로 알려진 이 대회에서 2위만 3번, 5번의 10위권 진입에 머물렀던 ‘하와이 징크스’를 깬 것.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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