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스포츠X파일⑤]KBO 민선총재 탄생까지

  • 입력 1998년 12월 29일 17시 07분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는 정치권의 ‘벼슬’로 치면 장관직 이상가는 ‘노른자위’.

그러기에 최고 인기스포츠인 국내 프로야구를 이끄는 수장 자리는 그동안 ‘낙하산 인사’의 전형처럼 돼왔다.

82년 프로야구 태동에서부터 17년간 단 한번도 야구인이 직접 뽑은 총재를 맞이하지 못했던 프로야구는 2월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관선총재’에게 배턴이 넘겨졌다.

구 여권의 10대 홍재형총재는 2년 가까이 임기가 남았지만 5월26일 자진해서 사의를 표명했다. 다음이 새정치국민회의 정대철부총재.

이 과정에서 권력층 내부의 균열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대철총재는 당초 여권에서 점찍었던 KBO총재 후보가 아니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열렬한 프로야구팬이었던 그는 ‘스타 정치인’의 이점을 십분 활용, 구단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가발전’한 총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취임 1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9월3일 경성그룹 비리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설 땅을 잃고 만다.

문제는 이때부터. 관례에 따라 최연장자로서 15일 총재대행이 된 박용오 OB구단주는 총재의 공백 틈새와 야구계의 높아진 민도를 바탕으로 사상 최초의 민선총재 실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다음날인 16일 곧바로 정관개정 작업에 착수한 그는 ‘총회의 임원만이 총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정관개정안을 만들었다.

이를 받아본 문화관광부는 펄쩍 뛰었다. 안그래도 차기총재의 인선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마당에 난데없이 ‘과도정부’에 불과한 총재대행체제의 KBO가 외부인사의 낙하산총재 영입을 반대한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었다.

문화부는 열흘간 시간을 번 끝에 9월26일 KBO에 정관변경 사유와 임시총회 회의록 등의 자료보완 요청을 하는 것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KBO도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한 것일까. KBO는 10월7일 최초 정관변경안에서 ‘총회의 임원만’을 ‘총회의 임원도’로 수정안을 보내는 것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문화부 입장에선 여전히 KBO가 괘씸하긴 마찬가지. KBO총재 자리는 정부의 몫인데 왜 이리 KBO가 들고나서는지 진의를 알아야 했다.

당시 여권에선 이미 누가 누구를 밀고 누가 차기 총재 0순위 후보라는 등의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다.

그래도 KBO의 ‘저항’은 완강했다. 한달여를 이핑계 저핑계 대며 뜸을 들이던 문화부는 신낙균장관이 11월26일 직접 구단주들을 만나 ‘총재대행도 중립적인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묘안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문화부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KBO에 밀리기 시작한 때. 사태는 급하게 돌아갔다.

박용오총재는 이 기회에 총재대행과 OB구단주직을 미련없이 버리고 12월1일 구단주 임시총회에서 중립적인 인사의 자격으로 만장일치 정식총재로 추대를 받았다. 결국 KBO총재 자리를 놓고 벌였던 KBO와 문화부의 지루한 줄다리기는 명분에서나 절차에서 하자가 없었던 KBO의 ‘한판승’으로 끝이 났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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