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사 ‘60대 이후 취업률 70%’… 공공분야 진출 쉬워[은퇴 레시피]

  • 동아일보

50대 중반에 나무의사 된 오세견 씨
대기업 광고사진-예술사진 촬영
코로나19 여파로 스튜디오 폐업… 귀농학교 이후 ‘산속 농사’ 꿈꿔
동아大서 나무의사 교육 150시간… 국가자격 합격 후 초봉 3000만원
신도시 개발로 수목 관리 수요 커… 병원 개업 후 정부 보호수 치료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의 은행나무 숲에서 나무의사 오세견 씨(숲결나무병원 원장)가 수목활력측정기를 활용해 나무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의 은행나무 숲에서 나무의사 오세견 씨(숲결나무병원 원장)가 수목활력측정기를 활용해 나무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나무의사는 나무를 진찰하고 치료하고 병을 예방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병원으로 찾아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왕진을 떠납니다.”》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나무의사 오세견 씨(54·숲결나무병원 원장)와 함께 서울숲에 있는 메타세콰이어와 은행나무를 둘러보았다. 그는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 심장 박동 소리와 폐 호흡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무 망치를 두들겨 보며 나무 속이 꽉 차 있는지, 썩거나 비어 있는지를 들었다.

그의 ‘왕진가방’에는 수목활력측정기와 토양분석 장비, 나무 망치, 루페와 윤척 등이 들어 있었다. 나무 줄기에 수목활력측정기 끝에 달린 뾰족한 두 개의 탐침봉을 꽂고 전기신호를 흘려보내니 나무 활력도가 수치로 나타난다. 또 뿌리가 뻗어 있는 땅에 토양분석기를 꽂아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외과수술용 가방에는 체인톱(전기톱)과 트릴, 끌 같은 장비도 들어 있다.

2018년 나무의사 자격시험 도입 이후 8년간 배출된 나무의사는 1737명. 2024년 도시숲법 제정, 2025년 산림보호법 개정으로 아파트 단지 등 생활권 수목 관리에 나무의사의 진단과 모니터링이 의무화된 후 나무의사 시장은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수목 진료와 산림·식물 보호 분야 국가기술자격 취득자의 55.9%가 50대 이상이다. 관련 자격 취득자 중 은퇴 연령층인 60대 이상의 취업률도 69.6%에 이른다. 나무의사 등 산림 관련 직종이 고령화 사회에서 ‘인생 이모작’의 대안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 사진작가에서 나무의사로

오 원장은 잘나가는 사진작가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홍익대 부근에서 상업광고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삼성, LG 휴대전화나 TV 같은 대기업 유명 브랜드를 촬영했다. 2005년 프랑스 유학을 가서 11년 동안 현지 교민신문의 프랑스 지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여행과 풍경, 예술사진을 찍는 작가로 활동했다. 2016년 귀국 후에도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폐업했다.

“빚만 남더군요. 50대가 됐으니 좀 더 긴 호흡으로 평생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충북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언젠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파리 근교 농장을 견학할 때마다 설렜다. 그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귀농귀촌학교에 다니던 중 2박 3일 현장 체험을 갔다가 임업에 대해 알게 됐다.

“논이나 밭농사는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숲속 농사인 임업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산속에 호두나무, 피칸 등을 심어 열매를 따고 산나물과 더덕, 카모마일을 키우며 표고버섯을 수확하는 것이죠. 최소 3~4년 기다리면서 하는 임업은 제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귀농귀촌 교육을 마치고 산림조합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산림경영자과정 교육을 이수한 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영림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무 심기, 숲 가꾸기, 간벌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벌목 작업을 하다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산 향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 진짜 산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 나무의사가 되다


그는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임업인 임야구입자금 대출을 받아 산지를 구입해 임업을 하려고 했다. 총 3억 원 이내에서 토지 감정가의 60%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연이율 1%로 15년 거치 20년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발품을 팔아 적당한 임야를 찾았지만, 감정가가 낮게 나와서 추가로 6000만원의 자금이 필요했고 준비가 부족했다. 산속에서 농사 짓는 꿈은 잠시 미뤘다.

대신 나무의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업 관련 학위나 경력도 없는 오 씨 같은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산림, 조경, 식물보호 분야 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을 따는 것이다.

산림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나무의사가 도기 위해 전국 15개 양성 기관에서 150시간 이상 의무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는 서울대, 신구대 같은 수도권 양성 기관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당시 경쟁률은 3대1, 4대1로 치열했다. 지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말마다 부산 동아대로 내려가 수업을 받았다.

“나무의사 시험이 어렵다고 하지만 아주 똘똘한 중학생이라면 6개월만 공부해도 딸 수 있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50대에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수목병리학과 해충학은 다 암기과목입니다. 화학식이 많은 토양학이 어렵다고 하는데 제겐 외우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죠.”

나무의사 시험 응시자 중에는 직장인도 많다. 하지만 주말에 수업 듣고 밤새 공부해 시험을 보기에 합격률은 높지 않다. 1차, 2차 시험 합격률이 15~20%에 불과하다. 오 씨는 “다행히 실직한 저는 온종일 공부할 수 있어 직장인보다 유리했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합격했다.

합격 후 국가유산수리(식물보호) 전문병원인 서울 강동구의 한 나무병원에 의사로 취직했다. 초봉은 3900만원이었다.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삼척 궁촌리 음나무 등 전국을 돌며 천연기념물 노거수(老巨樹)를 모니터링하고 치료했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1300살이 넘어요. 노거수여서 바람에 약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 긴급 출동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수술을 해주죠. 필요하면 영양제도 놔줍니다.”

그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진단할 때 사진가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다.

“사진가는 구도, 대칭, 비대칭 같은 구조적인 면을 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수관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으면 그쪽으로 쓰러질 확률이 높아요. 나뭇가지가 프랙탈 이론처럼 자연스럽게 뻗어 나가는 패턴을 벗어나면 위험 신호입니다.”

● 나무의사 초봉 3000만 원대


현재 산림청 공공사업이나 정부 발주 프로젝트의 나무의사 하루 노임 단가는 32만6359원, 수목치료기술자는 23만8447원으로 고시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보면 나무병원 신입 의사 초봉은 연 3000만~3500만 원 선, 3~5년 차는 연 4500만~5500만 원 선이다. 개업의나 대형 프로젝트를 전담하면 연 8000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나무의사 자격 취득자가 선호하는 취업 분야는 공무원(지방자치단체 녹지직 등)이 27.2%로 가장 높다. 이어 수목원 등 공공기관 25.6%. 합산하면 52.8%가 공공부문을 선호한다. 나무의사 자격이 안정적 공직 진출 관문으로도 기능한다는 의미다.

오 씨는 지난해 8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나무병원을 열었다. 나무병원을 만들려면 나무의사 2명 이상이거나, 나무의사 1명과 수목치료기술자 1명 이상을 갖춰야 한다. 병원 개업은 늦깎이 인연으로 만난 반려자 최가연 씨(51) 도움이 컸다. 최 씨도 영국 런던에서 플로리스트를 공부한 뒤 플랜테리어(식물 이용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해 왔으나 코로나19 이후 사업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때였다. 나무병원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오 씨 제안에 최 씨는 선뜻 수목치료기술자 공부를 시작했다. 수목치료기술자는 ‘간호사’ 역할이다. 이제는 늘 함께 현장에 나가 나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파트너가 됐다.

“나무병원은 입찰을 통해 생활권 수목과 보호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민간 건물(아파트) 조경 수목을 관리해요. 60대 이후에도 취업률이 높은 것은 전문 지식과 함께 평생 쌓은 인맥 관리 노하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전국 971개 나무병원 연간수익은 1554억 원 규모. 개별 병원 연평균 매출은 약 1억4700만 원이다. 각 나무병원에는 평균 2명 이상의 나무의사나 수목치료기술자가 있다. 나무의사 자격 취득자 1737명 중 많은 이가 현장에서 일한다는 증거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에 가장 많은 34~35%가 있다. 잇단 신도시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경과 가로수 유지 보수 수요가 전국 1위 지역이어서다. 서울은 10~11%로 2위다.

“가로수는 도시의 유일한 탄소 흡수원입니다. 잘못된 관리 방식으로 전국에서 매일 44그루의 가로수가 죽어 갑니다. 줄기 가운데를 싹둑 자르는 이른바 ‘닭발 전정’도 횡행합니다. 그러면 병균과 미생물이 침입해 나무 안쪽부터 썩어 들어가죠. 네모난 보도블록에 맞춰 뿌리를 잘라버리니 바람에 쓰러지는 일도 많습니다.”

그는 ‘프로젝트 숨:표’라는 사물인터넷(IoT) 통합 수목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나무 옆에 설치한 ‘숨:표’ 센서가 24시간 토양 수분, 온도, 기울기 등을 모니터링한다.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병해충 감염을 일찍 감지하고, 쓰러질 확률을 예측한다. 또한 3차원(3D) 디지털 트윈 기술로 나무가 흡수하는 탄소량을 측정해 국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오 씨는 나무의사를 하면서 사진 작업도 계속하겠다고 했다. 1년 동안 천연기념물 나무 한 그루를 계속 촬영해서 한 컷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봄에 새싹이 나오고, 여름에 풍성해졌다가,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에 앙상해지는 나무의 1년간 모습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간이란 무엇인지, 나무와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작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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