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메울 공공임상교수 40% ‘펑크’… “땜질식 파견 한계”

  • 동아일보

‘필수의료 강화’ 국립대병원서 파견… 1년6개월씩 2개 병원 순환근무
“업무 많고 긴 이동 시간도 부담… 의료인력 지역기피 해결책 안돼
정주여건 개선-보상 현실화 필요”

18일 충남 서산시 서산의료원에서 공공임상교수로 파견된 박성준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왼쪽)가 환자를 보고 있다. 서산=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18일 충남 서산시 서산의료원에서 공공임상교수로 파견된 박성준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왼쪽)가 환자를 보고 있다. 서산=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요즘 약을 줄이고 있는데 피검사 결과도 정상이고 증상도 괜찮네요. 이대로 약을 유지하겠습니다.”

18일 오후 충남 서산시 서산의료원 순환기내과 진료실. 공공임상교수로 일하는 박성준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정기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구모 씨(47)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구 씨는 “차로 2시간 거리인 대전 병원에 다니다가 서울대병원 의사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해 서산의료원으로 옮겼다”며 “1년에 한두 번은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선생님을 뵙고는 2년째 한 번도 안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도 내년까지다. 박 교수가 내년 2월을 끝으로 파견을 마치고 후임이 오지 않으면 구 씨는 다시 먼 병원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한 공공임상교수제가 정원의 40%를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임상교수제는 국립대병원이 의사를 채용해 지방의료원 등에 파견하는 사업이다. 의료계에서는 공공임상교수 같은 땜질식 단기 파견 방식으로는 지역 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공임상교수 정원 40% 못 채워


25일 동아일보가 교육부에서 받은 ‘국립대병원 공공임상교수 근무 현황’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공공임상교수 정원 50명 중 실제 근무하는 교수는 30명에 불과하다.

공공임상교수는 2022년 공공의료 인력 증원, 국립대병원의 지방 의료 책무를 강화하기 위해 시범 사업으로 도입됐다. 국립대병원 10곳 중 공공임상교수를 파견하는 병원은 8곳이지만, 이 중 정원을 채운 곳은 전남대병원(2명), 전북대병원(5명)뿐이었다. 경상국립대병원은 정원이 2명인데 현재 파견 중인 교수가 없다. 가장 많은 정원인 19명을 배정받은 서울대병원은 11명(57.9%) 채용에 그쳤다. 부산대병원과 제주대병원은 채용이 어렵다고 판단해 운영하지 않고 있다.

공공임상교수 충원이 어려운 건 국립대병원 의사들이 순환근무를 위해 이동하는 게 힘들고 업무가 과중해서다. 공공임상교수는 계약 기간의 절반인 1년 6개월은 지역에 근무하고 나머지 반은 소속 대학병원에 근무한다. 박 교수는 월, 화는 서울대병원, 수, 목, 금은 서산의료원에서 근무한다. 서울∼서산 왕복 300여 km를 초기엔 자가용으로 오갔으나 너무 피곤해 갈아타더라도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외래뿐 아니라 시술도 하고, 서울대병원에서는 당직도 선다. 애초 교수 3명이 파견될 예정이었지만, 박 교수 혼자 지원하면서 일이 몰렸다.

일부 공공임상교수는 1년 6개월간 계속 지역에 상주한다. 이 경우엔 정주 여건이 문제다. 전북 진안군 의료원 관계자는 “자녀 교육 등 문제로 시골에는 안 오려고 한다. 임금도 많이 주고 기숙사도 제공하지만 크게 의미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충분치 못한 보상도 문제로 꼽힌다. 공공임상교수 인력 대부분은 내과, 외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다. 필수과 의사는 수도권 병원에서도 부족하기 때문에 웬만한 곳에서 충분한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다. 공공임상교수는 국비로 1억2700만 원, 지방비로 1억2700만 원, 최소 2억5400만 원의 연봉을 받지만 소속 대학병원과 시골 지역을 오가면서 일하는 것을 고려하면 보상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교수들은 본다.

● 현실적 보상-정주 여건 개선 필요

의료계에서는 공공임상교수제 실패가 예견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의료인력 지역 기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

한 지역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공공임상교수는커녕 상시 모집하고 있는 본원 의사 채용도 어렵다”며 지역 의료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자연히 충원 부진이 이어졌고 목표 배정 인원도 해마다 줄었다. 시범사업을 시작한 2022년에는 목표 인원이 150명이었으나 지난해 50명으로 줄었다. 국비 예산도 93억7500만 원에서 올해 39억4000만 원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선 미봉책이 아닌, 필수의료 의료진이 지역에 머물 수 있도록 정주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조승연 인천시 의료원장은 “순환 근무할 수 있는 대형병원 인력을 만든 건 좋은 방향”이라면서도 “지금처럼 단기 파견 형태로는 지역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순환근무 의사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이 찾아올 만한 현실적 보상도 지급해야 한다고 본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공공임상교수제뿐 아니라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모두 결국 최종적 목표는 의료 인력이 계속해서 지역에 남아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지역보건의료인 연금을 신설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를 통해 지역의료 인력을 육성하는 동안 공공임상교수제, 시니어 의사제, 파견 의사 지원 제도 등을 통해 공백을 메울 것”이라며 “주거 여건 개선이나 필수과에 대한 수가 개선 등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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