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정오 무렵 충남 예산군 예산시장 일대.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예산장터 삼국축제’에는 색색의 국화꽃과 나들이 나온 가족 방문객들이 붐볐다. 간이 무대에서는 국악 공연이 한창이었는데, 간만의 맑은 날씨에 어르신들의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예산이 원래 보부상의 고장이래요. 그래서 국밥과 국수가 유명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가을 이맘때 피는 국화를 곁들여 ‘3국 축제’를 열게 된 거죠.”
2023년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예산 청년마을 ‘내일’을 이끌어온 박정수 대표가 자상하게 설명해 줬다. 박 대표와 팀원 5명은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 동안 열리는 이번 행사에 참여자 체험 프로그램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여권을 받아 들고 국밥나라, 국수나라, 국화나라를 두루 돌며 문제도 풀고 탐구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여행한다. 미션에 성공하면 상품권을 받아 소비할 수도 있다. 개장 첫날인 23일에는 1400여 명이 여권을 발급받았다.
24일 오후 충남 예산군 지역축제 현장에서 만난 박정수 청년마을 내일 대표. 예산=신석호 기자kyle@donga.com
“올해 9회를 맞은 지역축제에 처음으로 초대받았어요. 2023년 청년마을을 열고 3년을 활동한 끝에 지역 주민들에게 식구로 인정받은 느낌이에요. 군수님이 ‘열심히 해 달라’고 격려해 주셔서 정말 잘 진행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와 청년마을 ‘내일’은 올해 충남도 및 예산군과 함께 ‘예산대학’이라는 지역 청년 교육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대도시와 달리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은 지역의 청년들을 위해 지역에서 강사들을 선발해 요가와 자기 계발 등을 주제로 한 강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6월부터 진행된 첫 학기 강의에는 8개 강좌에 60여 명의 지역 청년들이 수강 중이다. 박 대표 팀은 강의 기획과 강사 발굴 및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강사를 모시면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과 관계가 이어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 덜 유명하더라도 예산 지역에서 강사를 발굴해 모시고 있습니다. 지역 청년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고요.”
모든 것이 3년 동안 지역 내 청년들을 발굴하고 엮어 공동체를 만들어 온 노력의 결과였다. 청년마을 팀원들과 이곳을 다녀간 외지 청년 그리고 현지 청년 등을 모아 ‘내일마을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현재 14명이 활동하고 있다. 카페와 서점, 스튜디오 등을 운영하면서 네트워크를 다져가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청년마을이 지역 청년 조합으로 외연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마을 내일 팀원들과 프로그램 참가자들. 사진제공=박정수 대표 “저도 외지인이어서 청년마을 3년을 졸업하면 떠나고 싶을까 봐 이곳 친구들과 저를 더 묶어놓고 싶은 거죠. 이장님이 저만 보면 ‘결혼시켜야 한다’고 하시는데 결혼하면 현실적인 이유로 이곳을 떠나고 싶을까 봐 미루고 있습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서울의 대학에서 경영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자본주의 경영학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것보다 사회학이 제시한 사회적 경제에 더 끌렸다. 이 분야 대학원 석사까지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잠깐 하다 1인 기업 ‘잇는 연구소’를 차렸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의 관점으로 자신의 지역을 바라보는 방법론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로 서울 관악구 저개발지역인 난곡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부산 출신으로 경북 상주에서 청년운동을 하는 선배를 만나 자신도 지방으로 내려갈 결심을 했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 세 명과 정착할 지역을 찾다 예산이 고향인 친구를 따라 2023년 예산에 내려오게 됐습니다. 그 해에 행안부 청년마을 프로그램에 지원해 선발되었죠.”
2023년 함께 예산 살이를 시작한 박상준 로컬안내소 고로컬 대표(왼쪽)와 함께. 예산=신석호 기자kyle@donga.com 청년마을 ‘내일’은 ‘나를 찾는다’는 컨셉으로 자신과 진로에 고민이 많은 청년들을 상담하고 코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3년 동안 500여 명이 지역살이를 하면서 고민을 나누고 갔다. 다양한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들에게 몸을 낮춘 ‘서번트 리더십’을 행사하며 코칭과 맨토링을 하다 보니 시간은 부족하고 몸은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후배들이 배우며 커가는 것이 흐뭇했다.
“지금까지 달려온 방향이 옳다고 생각해요. 함께 해온 친구들과 같이 지역이 가진 스토리로 타지의 생활인구를 끌어들이는 콘텐츠 플랫폼을 만드는 게 비전입니다. 내년에는 후배들의 역량 강화에 힘을 써 스스로 과제를 찾고 수행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려 합니다.”
떠나고 싶어질까 봐 지역 네트워크를 더 키워가는 박 대표의 노력은 청년마을 3년을 졸업한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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