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아파트 ‘공공 개방’ 분쟁
고덕아르테온 “사고-민원 속출, 구청에 허가요청… 거부땐 소송”
인근 5000가구 “재건축 조건” 반발
일부 아파트 시설 개방 안해 물의… 市 “위반땐 이행강제금 적극 부과”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아파트 단지 내 공공보행로에 사유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아파트 단지 내 시설 개방을 둘러싼 갈등이 잇따르는 가운데,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가 단지를 관통하는 보행로를 가로막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인근 5000가구 주민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반발이 거세다. 당국은 행정제재를 예고했고, 단지는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이웃 간 배려가 사라지고 아파트 간 계층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입주민 안전” vs “인근 주민 불편”
12일 강동구 고덕아르테온 단지 보행로 입구에는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기부채납지가 아닙니다’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 보행로는 단지를 가로질러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으로 이어진다. 이에 인근 고덕센트럴아이파크(1745가구), 고덕자이(1824가구),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1859가구) 주민도 자주 이용한다.
갈등은 이달 초 고덕아르테온 입주자대표회의가 보행로에 보안시설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불거졌다. 외부인 출입을 막자는 안건에 입주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것. 대표회의 측은 “올 1월 인근 주민이 단지 내에서 넘어져 우리 측에 보험금을 청구한 사례가 있었고, 7월엔 외부 청소년이 지하 주차장에 침입해 차량에 소화기를 분사하는 등 안전사고가 잇따랐다”고 주장했다. 대표회의는 13일 강동구에 보안시설 설치 허가를 요청할 계획이다. 강동구가 이를 거부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인근 주민들은 “입주민 이기주의”라며 반발하고 있다. 보행로가 막히면 지하철역까지 약 500m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 임모 씨(49)는 “모든 문제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과도한 대응”이라며 “이웃 단지끼리 얼굴 붉힐 일이 늘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진 이유는 고덕아르테온이 재건축 당시 외부 개방형 보행로 조성을 조건으로 인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강동구에 따르면 조합은 정비계획에 외부 개방형 공공보행로 조성을 포함했고, 서울시는 이를 조건으로 재건축을 승인했다. 강동구 관계자는 “보행로 차단 시 과태료나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현재는 주민 간 갈등이 심화한 만큼 행정 제재보다 중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아파트 단지 내 공공보행로에 사유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곳곳에서 시설 개방 두고 진통
아파트 내 공공시설 개방을 둘러싼 분쟁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는 아이돌봄센터·독서실 등 공동시설에 외부인 출입을 막으려 해 논란이 됐다. 2017년 특별건축구역 지정 당시 해당 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조건으로 용적률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서초구가 매매와 담보 대출을 막는 초강수를 두자, 원베일리는 공동시설을 다시 개방했다. 2016년 준공한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도 1년이 넘도록 공공시설을 개방하지 않다가 서초구청이 강제 이행금 부과 등에 나서자 2018년에 개방했다.
강남구 디에이치아너힐즈는 준공 후 주민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2020년 1월경 공공보행통로에 출입증을 찍어야 오갈 수 있는 1.5m 높이의 담장을 설치했다. 이후 공동주택관리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담장은 현재까지 철거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례가 이어지자, 서울시는 공공개방 의무를 지키지 않는 단지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적극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공동주택 주민공동시설 개방 운영 기준’을 마련해 특별건축구역 고시문과 분양계약서, 건축물대장 등에 시설개방 의무를 명시하도록 했다. 건축이행강제금이 부과되며 액수는 전체 단지 시가표준액의 3%로 최대 수십억 원에 이를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파트 단지 간 갈등은 각자의 안전성과 이익만을 우선시해 발현하는 현상”이라며 “서로 구별 짓는 배타성을 지양하고 공공성과 공존의 감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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