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정 갈등속 ‘병원 초과사망’ 6개월간 3136명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5일 03시 00분


의료공백 대형병원 환자 수용못해

지난달 31일 서울 도봉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의정갈등이 약 1년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환자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 뒤 병원에서 예상 사망자를 웃도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의료 공백으로 진료하는 의사가 줄면서 대형병원 등이 요양병원 등에서 옮겨오는 환자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사망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만든 ‘의료공백 기간 초과사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7월 전국 의료기관에서 초과사망이 3136명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사망은 통계적 개념으로 의료공백에 따른 사망이 예상 평균치보다 훨씬 더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2∼7월 입원 환자 사망과 사망률도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많거나 높았다. 2023년 2∼7월 국내 의료기관에는 491만6345명이 입원해 4만5724명이 숨졌으나 지난해 2∼7월에는 467만4148명이 입원해 4만7270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24만2197명이 덜 입원했으나 사망자는 1546명 늘어난 것이다. 2015∼2023년 2∼7월 입원환자 대비 평균 사망률도 0.81명에서 지난해 2∼7월에는 1.01명으로 상승했다.

“의정갈등이 부른 치료 공백, 병원 못간 고령환자 초과사망 늘어”


[의정 갈등 1년] 〈상〉 병원 ‘초과사망’ 분석해보니
작년 2∼7월 초과사망 질환… 1위 기질성 장애, 2위 심부전-쇼크
전문의 적은 요양병원, 치료 한계… 대형병원 중환자실 가동률 27% ↓
“중증환자 진료대책 촘촘히 내놔야”
지난달 초 경기 성남시의 한 요양병원. 뇌출혈 등으로 약 10년간 투병하던 84세 남성이 폐렴 악화로 숨졌다. 요양병원 의료진은 대형병원에서 치료하려고 가까운 병원 6곳에 연락했으나 병원들이 의사 부족 등을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 의료진은 “의정갈등 이전이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치료했을 환자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6일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병원을 떠난 지 1년 가까이 지났다. 올해 상반기(1∼6월) 사직 레지던트 복귀율은 2.2%(199명)에 그치는 등 의정갈등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될수록 환자들에 대한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어 의료계 안팎에서는 의정갈등을 조속히 해결하고 의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코로나 이후 사망자 감소 시기에 오히려 증가”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만든 ‘의료공백 기간 초과사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7월 초과사망이 가장 많이 발생한 질환은 급성치매 등 기질성 장애(65세 이상)다. 이런 결과는 요양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는 고령 만성질환자들의 초과사망이 많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 심부전 및 쇼크, 신경계 종양, 무산소성 뇌손상, 합병증 미동반 패혈증 등이었다. 이런 질환들은 전공의가 빠져나간 대형병원에서 주로 담당한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출신인 김 의원은 각 질병군의 2015∼2023년(2∼7월) 입원환자 사망률을 기준으로 지난해 2∼7월 예상 사망자를 추산했다. 9년 동안 환자 1만 명 중 100명이 숨졌다면 이 사망률을 기준으로 2024년 예상 사망자를 산출할 수 있다. 이어 연령, 질환, 중증도 등에 따라 사망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정해 예상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초과사망’으로 분류했다. 분석에 사용된 질병군범주(AADRG)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기관 심사 등에 사용하는 기준으로 총 516개다. 김 의원은 “의정갈등으로 대형병원을 찾은 응급환자는 물론이고 상태가 악화돼 대형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실제 초과사망자 수가 이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장을 맡은 김창수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기간 고위험군 사망자가 늘어난 걸 고려하면 2024년, 2025년에는 사망자가 줄어야 한다”며 “(초과사망자 수가) 과소추정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한정된 의료자원, ‘소극적 진료’ 이어져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의 환자들은 갑작스럽게 증세가 악화될 수 있고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응급 상황이 아니라도 협진, 추적관찰 등이 필요해 대형병원을 찾지만 이들을 치료할 의사들이 부족한 실정이다. 호남권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는 “상태가 많이 악화된 환자들이 응급실로 오고 있다”며 “신경외과 의사가 없을 때 신경외과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들어오면 진료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요양병원에는 상주 의사가 적고 야간에는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많기 때문에 특정 질환과 관련해서 제대로 진료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한 요양병원 간호과장은 “고령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으면 대형병원 응급실로 향하는데, 결국 진료를 받지 못하고 되돌아오곤 한다”며 “요양병원에선 합병증 등을 치료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전공의 이탈로 인력이 부족해진 병원들은 기존에 진료하던 환자들을 주로 담당하는 ‘소극적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기존 환자에게 집중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 대형병원의 내과계 중환자실 가동률은 2023년과 비교할 때 27.4% 감소했고 응급중환자실 가동률은 24.4% 줄었다. 반면 응급환자 사망률은 10.5% 늘었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병실과 의료 인력 운용에 여유가 있다면 환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중증환자 진료-배후진료 강화해야”

의정갈등이 장기화될수록 환자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창민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초과사망이 우려되는 만큼 정부도 의료공백을 버틸 중증환자 진료 대책을 보다 촘촘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도 “현재 정부 대책은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인상으로 의료진 추가 이탈을 막고 경증 환자의 상급병원 이용을 제한하는 미봉책 수준”이라며 “응급실 배후진료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초과사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정부가 의료계 실무자들과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한해서라도 대화의 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초과사망
특정 요인 때문에 일정 기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숨졌는지 통계적으로 추산한 지표.

#의료공백#의정갈등#소극적 진료#초과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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