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28차례 의정협의, 소통하긴 했나… 회의록 공개해야[기자의 눈/박성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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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이탈 ‘의료 혼란’]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인지
정부 접근 방식이 문제였는지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박성민·정책사회부
박성민·정책사회부
“정부는 의사들과 28번이나 만나 의대 증원을 논의했다는데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가요. 도대체 양측이 무슨 이야기를 했답니까?”

정부가 이달 6일 내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뒤 의사들의 반발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은 19일 과반이 사직서를 내고 20일부터 상당수가 병원 근무를 중단하며 의료 공백이 현실화됐다.

그런데 기자 주변에선 정부와 의사들의 ‘의대 증원’ 논의가 왜 파국에 이르렀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가 다른 집단도 여러 번 만나 의견을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 접점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민이 마주한 결과는 끝이 안 보이는 ‘의료 대란’이었다.

의정협의는 지난해 1월 말 시작됐고 의사 인력 관련 안건은 지난해 6월 8일 열린 10차 의정협의 회의 때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국민은 양측이 8개월간 머리를 맞대며 최소한의 합의에 도달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날 때마다 정부는 “의사 증원 필요성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했고 의사단체는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다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 정부가 ‘2000명 증원’을 전격 발표하면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됐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정부의 접근 방식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35년 국내 의료인력 1만5000명 부족’이란 분석을 제시한 한 전문가도 단번에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에는 우려를 표했다. 이들을 가르쳐야 할 대학과 수련시켜야 할 병원이 준비할 시간을 주고 ‘단계적 증원’을 검토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정원(3058명)의 65%를 한 번에 증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건설현장 폭력행위(건폭), 사교육 카르텔 등 특정 집단을 공격해 지지율을 올려온 정부가 이번에는 의사를 대상으로 지목한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의사들도 국민과 환자 앞에 당당할 순 없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될수록 국민에게는 “우리가 없어도 되는지 두고 보자”는 특권의식으로 비칠 뿐이다. 처음에 “정책 방향에 공감한다”고 했던 필수의료 패키지 대책마저 거부하는 모습에 의사들 내부에서도 “같은 의사인 게 부끄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각자 떳떳하다면 지난 1년간 의정협의에서 무슨 논의를 했는지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 현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더 있는지는 그걸 보고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의대 증원#논의#소통#의료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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