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하얘졌지만, 붙잡겠단 생각만” 여성 구한 새내기 경찰관[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1월 18일 12시 00분


코멘트

사건 당시 3개월 차 신입 경찰관 윤준배 순경

지난달 6일 다리 난간을 넘은 여성을 맨손으로 끌어당겨 생명을 구한 윤순배 순경(45)의 모습. 사진= 김예슬 기자. 2024.01.04
지난달 6일 다리 난간을 넘은 여성을 맨손으로 끌어당겨 생명을 구한 윤순배 순경(45)의 모습. 사진= 김예슬 기자. 2024.01.04
지난달 6일 새벽 12시 40분경, 서울 강남경찰서 청담파출소에 ‘젊은 여성이 영동대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윤준배 순경(45)은 부리나케 현장으로 출동했다. 다리 난간 앞에서 정말 어떤 여성이 서성이고 있었다. 윤순경은 ‘여성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있다’는 무전을 듣자마자 바로 순찰차에서 내렸다. ‘저 사람이 맞구나!’

순찰차를 본 여성은 갑자기 난간 위로 올라갔다. 놀란 윤 순경은 여성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그는 난간 위에 앉아 몸을 던지려는 여성을 필사적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곤 여성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1초라도 늦었으면 여성은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윤 순경은 30대 여성 A 씨를 무사히 구조했다.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생각만…머릿속이 하얘졌다”
마흔다섯, 베테랑 경찰로 보이지만 사실 윤 순경은 입직한지 3개월이 막 지난 새내기 경찰관이었다. 사실상 처음으로 심각한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게다가 비번 날 자원근무를 하던 중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윤 순경은 “신입이다 보니 요령 같은 것도 없고, 머릿속이 하얘지더라”라면서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칫 같이 떨어지면 본인도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윤 순경은 ‘눈앞에서 구하지 못하고 저분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지만…진솔한 대화가 우선이었던 윤 순경
서울 강남경찰서 청담파출소 소속 윤준배 순경. 사진= 김예슬 기자. 2024.01.04
서울 강남경찰서 청담파출소 소속 윤준배 순경. 사진= 김예슬 기자. 2024.01.04
당시 A 씨를 구하면서 뒤로 심하게 넘어진 윤 순경은 머리와 눈 부위를 다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윤 순경은 A 씨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A 씨를 파출소로 인계했다. 조심스럽게 A 씨에게 무슨 일이 있길래 다리 위로 갔느냐고 물었다. 1시간 동안 여성은 서럽게 울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털어놨다. 그는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다독였다. A 씨의 마음도 많이 풀어진 듯했다.

파출소에서 몸도 마음도 녹인 A 씨는 가족과 연락이 닿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A 씨는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사건 다음 날 오전이 되어서야 윤 순경은 경찰 병원으로 향했다. CT 촬영을 한 뒤 전치 3주 상당의 안와골절 진단을 받고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현재는 치료를 받고 거의 나아진 상태다.

“늦은 나이에 도전한 경찰…사회에 기여하는 삶 살고파”
윤 순경은 4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경찰에 도전했다. 그전까지는 부모님 일을 도와 식당 자영업을 해왔다. 그는 “식당 일을 하면서도 어린 시절 꾸었던 ‘꿈’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련은 점점 짙어졌다. 마침내 응시 가능한 법적 나이가 1년 남았을 때 그는 경찰 시험에 도전했다. 경찰직에 성공적으로 입직한 그는 출퇴근 때 항상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밝혔다. 출근할 때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자’는 생각에 즐겁고, 퇴근할 때는 ‘무언가를 해결하면서 내가 도움이 됐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보람을 느낀다.

윤 순경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며 “그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지랖 넓어…고민 들어주기 좋아해”
물론 항상 모든 일들이 순탄하지는 않다. 술에 취한 사람들을 귀가시키려다가 욕설을 듣거나 멱살을 잡히는 일도 허다하다. 그럴 때면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윤 순경이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이유는 남을 돕는 것이 좋아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오지랖이 넓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대학시절, 버스 정류장에서 한 여고생이 직장인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피의자를 붙잡아 신고했다”며 “최근에는 치매 어르신들을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줬는데 그런 경험은 이 직업이 아니면 할 수 없다. 가장 보람차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작, 겁내지 말고 부딪혔으면…”
서울 강남경찰서 청담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윤준배 순경. 사진= 김예슬 기자. 2024.01.04
서울 강남경찰서 청담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윤준배 순경. 사진= 김예슬 기자. 2024.01.04
늦은 나이에 경찰이 된 그는 발령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아무래도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 나이 많은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발령을 받은 후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싶을 정도로 상상 이상의 격려를 받았다.

윤 순경은 “나이 많은 신입이 들어와서 불편할 수 있을 텐데 소장님과 팀장님, 팀원들 모두 먼저 다가와서 챙겨주고 따뜻한 조언을 해 준다”라며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면서 적응을 빨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일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동료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내서 부딪혀보면 걱정했던 것들이 사실은 별거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겁내지 말고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경찰이 되는 꿈을 이룬 그는 새로운 꿈을 꾼다. 바로 인정받는 수사관이다. 그는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보이스피싱, 전세사기 같은 사건에 관심이 많다.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