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50바늘 꿰맸지만 후회 안해”…‘묻지마 폭행’ 여성 구한 이수연 씨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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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1월 11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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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14cm 자상, 작은 병원 갔더니 의사가 놀라
회사에선 사무직으로 임시 발령 배려
“가해자, 구치소에서 계속 난동…반성했으면”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자 차에서 내린 아버지 이상현 씨와 아들 이수연 씨. JTBC 뉴스 유튜브 캡처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자 차에서 내린 아버지 이상현 씨와 아들 이수연 씨. JTBC 뉴스 유튜브 캡처

“살려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지난해 11월 18일 이수연 씨는 아버지 이상현 씨와 차를 타고 집에 가던 중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당시 운전을 하던 이수연 씨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한 여성이 괴한에게 마구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이 씨 부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를 세우고 여성에게 달려갔다.

이 씨 부자를 본 남성은 슬금슬금 도망쳤다. 부자는 우선 여성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굴이 많이 다친 여성은 겁에 질려 있었다. 괜찮다는 여성의 말에 부자는 바로 폭행범을 쫓기 시작했다.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서 폭행범과 마주 선 이수연 씨. 그는 상대에게 “그만두세요!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소리를 지르며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 순간 상대방이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휘둘렀다. 이수연 씨는 그 칼에 얼굴을 찔렸다.

칼이 얼굴에 들어온 순간 이수연 씨는 얼굴에 뜨겁게 흐르는 액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칼이 지나간 자국을 만져봤다. 손바닥에 새빨간 피가 잔뜩 묻어났다.

이수연 씨는 기자에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경찰에 그 남성을 넘길 생각만 하고 있었다”며 “남성이 칼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가해 남성은 이수연 씨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본 뒤 같이 있던 아버지 이상현 씨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이상현 씨는 남성이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뒤로 빠졌다.

이수연 씨는 “제가 칼을 맞은 것 보다 가해 남성이 칼을 들고 아버지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더 화가 났다”며 “동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지’라는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수연 씨는 아버지 이상현 씨와 남성이 다시 도주하는 것을 보고 거리를 벌려가며 추적했다고 한다. 가해 남성이 500m 거리에 있는 공원 풀숲에 숨자 부자는 경찰에게 위치를 바로 알렸다. 이후 5분이 채 안 돼 출동한 경찰은 가해 남성을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당시 가해 남성의 소지품에서는 밧줄까지 발견됐다. 피해 여성을 납치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그의 얼굴에 난 14cm 자상 보고 놀란 의사
당시 응급실로 실려온 이수연 씨. 이수연 씨 제공
당시 응급실로 실려온 이수연 씨. 이수연 씨 제공


‘묻지마 폭행’ 가해자를 경찰에 인계한 후 이수연 씨는 근처 작은 병원으로 터덜터덜 갔다. 당시엔 크게 아프지 않아 피가 났어도 대수롭지 않은 상처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칼에 찔린 상처가 가볍다고 판단해 인근 성형외과에 들어갔다”며 “하지만 막상 담당 의사가 저를 보고 눈동자가 커진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수연 씨를 본 성형외과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후송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이수연 씨는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의 얼굴에는 약 14cm나 되는 심각한 자상(刺傷)이 생겼다. 담당 의사는 칼이 얼굴 근육층까지 들어와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50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오늘(지난달 20일) 실밥을 풀 수 있었다”며 “흉터를 없애는 치료는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아직 땀이 들어가면 안 되고 음식을 씹을 때는 상처가 있는 왼쪽 턱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물리적인 치료는 지금까지 잘 진행되고 있지만, 담당 의사와 수사기관 사람들은 그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범죄 피해자들은 일상생활을 진행하다 어느 순간 과거의 사건이 생각나면서 공포, 공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연 씨는 “아직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PTSD 증상이 나타난 적은 없다”면서도 “이후 정신적인 부분이 걱정된다고 수사기관에 말하자 범죄피해자지원센터(범피센터)를 소개해 줘서 감정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줬다”고 전했다.

이수연 씨는 “범피센터에서 범죄 피해자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해 주고 있어 저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며 “다만 흉터 치료의 경우 성형·미용으로 분류돼 지원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의 감사 인사 그리고 인터뷰
동아닷컴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수연 씨.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동아닷컴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수연 씨.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피해 여성은 이수연 씨가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수없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제가 다쳤을 때도 피해 여성분이 계속 괜찮냐고 물어봐 주셨다”며 “오늘 실밥을 풀러 병원에 왔을 때도 직접 와서 감사하다고 인사해 오히려 제가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여성분이 ‘원망하고 싶다면 자신을 원망해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원망감은 들지 않았다”며 “요즘 세상에는 도와줘도 나 몰라라 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인데 이렇게 인사를 드린다는 것부터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도와드린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지만 여성분이 부상을 입었다는게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수연 씨는 JTBC 첫 보도 이후 여러 방송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피해 여성이 뉴스에 나간 이후 이상한 댓글 때문에 공포감이 생겼다”며 “피해 여성까지 인터뷰 대상에 넣는 경우 인터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동아닷컴의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따만사) 인터뷰는 피해 여성이 참여하지 않고 의인들에 초점을 둔 인터뷰라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사회의 인정
경기서부경찰서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아버지 이상현 씨와 아들 이수연 씨.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경기서부경찰서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아버지 이상현 씨와 아들 이수연 씨.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이수연 씨는 평택의 한 반도체 회사에서 PM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는 근무시간 내내 반도체 생산 장비들이 잘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해서 앉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의로운 일을 하다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회사는 그가 회복을 잘할 수 있도록 사무직으로 임시 발령을 내줬다고 한다.

그는 “회사에서 많이 배려를 해줘서 빨리 회복할 수 있던 것 같다. 이제 몸이 많이 회복되어서 현장 근무에 다시 투입되도록 요청할 것이다”라며 “회사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이 정말 의로운일을 했다고 많이 격려해 줬다”고 전했다.

이수연 씨가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데는 가족들의 공이 컸다. 그는 삼 형제 중 막내다. 두 형들이 그의 회복을 옆에서 정성껏 도왔다. 운송업을 하는 아버지 이상연 씨와 어머니 또한 그의 일상생활 복귀를 위해 힘을 합쳤다.

몸을 추스린 이수연 씨는 최근 아버지와 함께 수원시청과 경기서부경찰서 그리고 LH공사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그는 “잘해주셨다는 분들이 많아서 많이 부끄럽다”며 멋쩍게 웃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부자는 LG복지재단이 수여하는 ‘LG의인상’을 추가로 받았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
수원시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이재준 수원시장과 기념촬영을 한 아버지 이상현 씨와 아들 이수연 씨.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수원시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이재준 수원시장과 기념촬영을 한 아버지 이상현 씨와 아들 이수연 씨.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평범한 사람이 칼이 찔리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수연 씨 역시 이런 일을 겪을 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비슷한 사건의 뉴스를 보고 ‘나 같으면 지나가다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일이 살면서 벌어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막상 겪고 나니 세상이 더 위험한 것 같다. 좀 더 안전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최근 가해 남성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구치소에서 계속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반성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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