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성능저하’ 애플, 국내 소비자에 7만원 배상…“선택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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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2월 6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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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15 시리즈 국내 정식 출시일인 10월 13일 서울 애플스토어 명동점에서 예약구매 고객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2023.10.13/뉴스1
아이폰 15 시리즈 국내 정식 출시일인 10월 13일 서울 애플스토어 명동점에서 예약구매 고객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2023.10.13/뉴스1
애플이 신형 아이폰 판매를 위해 업데이트로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일부러 떨어트렸다는 이른바 ‘배터리 게이트’ 의혹과 관련해 법원이 애플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민사12-3부(부장판사 박형준 윤종구 권순형)는 이모씨 등 7명이 애플 법인과 대표이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애플이 이씨 등에게 1인당 7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CPU·GPU 성능 제한 업데이트, 소비자에 선택하게 했어야”

이씨 등은 애플 측에 재산상 피해에 대해 10만원,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10만원씩 총 20만원을 청구했다. 항소심은 이중 정신적 손해배상금으로 7만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소비자기본법은 ‘사업자의 책무’로서 사업자는 물품등을 공급함에 있어서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이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거래조건이나 거래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소비자에게 물품 등에 대한 정보를 성실하고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로서는 운영체제인 iOS의 업데이트가 일반적으로 아이폰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업데이트가 아이폰에 탑재된 프로세서 칩의 최대 성능을 제한하거나 이로 인해 앱 실행이 지연되는 등의 현상이 수반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 아이폰은 당시의 스마트폰 기술수준에 비추어 최상급의 성능을 갖춘 고가의 기기였고, 애플도 이를 강조해 홍보했다”며 “비록 전원 꺼짐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식이 아이폰의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일부 제한하는 것인 이상, 애플은 소비자들에게 업데이트를 설치할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이를 고지할 의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애플은 이러한 중요사항에 관하여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이는 애플이 위와 같은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 원고들은 업데이트 설치 여부에 관한 선택권 또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기회를 상실했으므로 애플은 위와 같은 고지의무 위반의 불완전이행으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업데이트에 포함된 성능조절기능은 전원꺼짐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일정한 조건에서만 CPU·GPU 성능을 일부제한하고, 전원꺼짐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조건에서는 성능조절기능은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며 “업데이트로 인해 영구적으로 또는 항상 아이폰의 성능을 제한받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들의 재산상 피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장이 2018년 11월  서울 종로구 가든타워빌딩에서 열린 ‘애플 아이폰 1차 집단 손해배상 소송제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8.1.11/뉴스1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장이 2018년 11월 서울 종로구 가든타워빌딩에서 열린 ‘애플 아이폰 1차 집단 손해배상 소송제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8.1.11/뉴스1
◇소비자 대리인 “애플, 소송제도 악용해…나머지 피해자에게도 배상 촉구”

소비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선고 후 “소송을 제기한지 5년 8개월 만에 이제 항소심에서 배상 판결이 내려져서 다행”이라며 “비록 7명만 항소했지만 애플이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로 나머지 피해자들에게도 적극적인 피해배상을 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항소심 과정에서 법원은 미국처럼 피해자 전체를 대상으로 배상하는 조정을 희망했으나, 애플이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다르다’며 거부해 무산됐다”며 “사법 체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배상을 받고 우리나라는 이렇게 험난한 소송을 해서 한 사람들만 배상을 받는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업데이트 시점을 소비자들은 알 수 없고 애플에만 기록이 있는데, 애플이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미루다가 법원이 제출하라고 하자 그제서야 제출했다”며 “우리나라 소송제도가 피해자들 구제에 미비하다는 것을 악용하는 파렴치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거대 기업들이 이제 증거를 자기네들이 독점하면서 소송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를 꼭 도입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논란은 애플이 2017년 하반기 구형 아이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서 성능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애플 측은 구형 아이폰의 배터리 노후화로 인해 전원이 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성능을 저하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소비자들은 신형 아이폰 판매를 위해 구형의 성능을 떨어뜨렸다고 반발했다.

소비자들은 2018년 애플을 상대로 “아이폰 성능 저하에 따른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같은 취지의 소송이 잇달아 제기돼 원고 6만2806명, 청구 배상금 127억여원의 대규모 소송이 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애플에 배상 책임을 묻기엔 소비자들이 제출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에서는 성능 저하의 증거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소비자 7명만 진행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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