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 아니죠?” 답 없는 승객의 수상한 가방…범죄 막은 택시기사 ‘촉’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9월 11일 13시 39분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인근 지구대로 데려간 택시기사 양모 씨가 지난 8일 전북 남원경찰서(김철수 서장)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남원경찰서 제공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인근 지구대로 데려간 택시기사 양모 씨가 지난 8일 전북 남원경찰서(김철수 서장)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남원경찰서 제공
큰 가방을 들고 장거리로 이동하려는 승객을 수상히 여긴 택시기사 덕분에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검거했다.

11일 전북 남원경찰서에 따르면 택시기사 양모 씨(66)는 지난 6일 오후 4시 40분경 남원 버스터미널 앞에서 손님 A 씨(21)를 태웠다.

휴대전화 앱으로 택시를 잡은 A 씨의 목적지는 대전 모처였다.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이 길었기에 양 씨는 딸뻘보다도 어린 손님과 말벗을 자처했다.

양 씨는 “대전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A 씨는 “찍힌 대로 가면 돼요”라고만 답했다.

이후 A 씨는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로 연신 문자메시지만 보냈다. 양 씨는 구체적인 장소를 대답하지 못하는 A 씨가 수상해 백미러로 A 씨를 살폈다. 그러던 중 A 씨 옆에 있는 큰 가방을 발견했다.

양 씨는 문득 2년 전 일이 떠올랐다. 과거 양 씨는 남원에서 순창으로 향하는 손님을 태웠다가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 손님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었다. 양 씨는 당시 그 수거책을 잡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A 씨와 가방을 번갈아 보던 양 씨는 “학생, 나쁜 일로 가는 거 아니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A 씨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택시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양 씨는 “그러면 안 된다”며 문을 잠근 채 곧바로 근처 지구대로 택시를 몰았다. A 씨를 태운 지 고작 5분 만이었다.

지구대에서 경찰들은 양 씨 말을 듣고 A 씨가 지닌 가방을 확인했다. 가방 안에는 현금 2000만 원이 들어있었다.

A 씨는 광주 등지에서 보이스피싱 조직 지시를 받고 현금 수거 역할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명확한 목적지를 답하지 못한 것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앱을 통해 택시를 불러줬기 때문이다.

양 씨는 “과거에도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죄책감이 항상 남아 있었다”며 “이번에는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거책을 잡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적극적인 대처로 범죄를 예방한 양 씨에게 표창장과 신고 포상금을 수여했다.

남원경찰서 관계자는 “시민의 적극적인 대처로 금융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A 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하고 현금 수거를 지시한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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