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급 ‘양간지풍’, 마른 대기 휩쓸며 화재 키워… 비가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1일 2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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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으로 번진 가운데 주민들이 긴급하게 대피를 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제공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으로 번진 가운데 주민들이 긴급하게 대피를 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제공
11일 강원 강릉 산불이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번진 데는 기상과 지형, 수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봄철 강원 지역에 부는 강한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려 불씨를 제공했고, 헬기가 뜨는 것을 방해해 조기 진화를 어렵게 했다. 그사이 불길은 바람을 타고 바싹 마른 대기와 땅으로 번져 갔다. 여기에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 숲이 불쏘시개가 됐다.

11일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 출동한 소방대원이 민가로 번진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2023.4.11/뉴스1
11일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 출동한 소방대원이 민가로 번진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2023.4.11/뉴스1


● 대형 화재 만든 ‘양간지풍’

이날 강원 영동 지역에는 초속 30m(시속 108km)가 넘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양양 설악산 초속 37.8m(시속 136km), 고성 현내면 30.6m(110km), 동해 30.1m(108km), 강릉 연곡면 28.7m(103km) 등의 강풍이 관측됐다. 풍속에 따라 태풍의 세기를 5단계로 나누는데 초속 33m 이상 44m 미만은 기차 탈선 등 피해가 발생하는 ‘강’(3단계) 태풍에 해당한다. 비록 순간적이지만 ‘강’ 태풍급 바람이 분 셈이다.

이날 전국적으로 강풍이 불었어도 최대풍속은 초속 20m(시속 72km) 전후였다. 유독 강한 강원 영동 지역 바람은 한반도 상공의 ‘남고북저(南高北低)’ 기압 분포에 따른 ‘양간지풍(襄杆之風)’ 때문이었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봄이 되면 한반도 남쪽에 이동성 고기압이, 북쪽에 저기압이 발달하는 기압 분포가 자주 나타난다. 이때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로 강한 서풍이 발생하는데,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푄현상’(바람이 산맥을 오르내리며 고온 건조해지는 현상)을 일으키고 풍속도 빨라진다. 이것이 양간지풍이다.

2005년 낙산사를 태운 양양 대형 산불, 2019년 4월 고성·속초 산불, 지난해 3월 울진·삼척 산불 등 강원 지역에선 봄철 ‘양간지풍’으로 인해 작은 불씨가 대규모 화재로 번지곤 했다. 이 때문에 예부터 양간지풍은 불을 부르는 바람이란 뜻의 ‘화풍(火風)’으로 불렸다.

● 강릉 2주간 강수일수 단 하루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4.11/ 소방청 제공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4.11/ 소방청 제공
설상가상으로 강릉과 고성, 동해 등은 건조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대기가 바짝 마른 상태였다. 특히 강릉의 경우 최근 2주간 강수일수가 하루에 불과했고 강수량도 평년 대비 50.5%에 불과해 땅마저 건조했다.

불이 난 강릉 지역 산림에 소나무가 빽빽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나뭇잎이 있는 침엽수이고, 휘발성 물질을 갖고 있어 불에 타기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불끄는 저동길 주민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불끄는 저동길 주민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1일 오후 화재 피해를 입은 강릉시 운정동의 한 마을에서 대피했던 이재민이 잿더미만 남은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1일 오후 화재 피해를 입은 강릉시 운정동의 한 마을에서 대피했던 이재민이 잿더미만 남은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다행히 11일 오후 강릉 지역에 비가 내리면서 불이 잦아들었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강풍 탓에 번지는 불길을 잡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봄철 ‘남고북저’의 기압 분포가 계속될 수 있고, 대기도 건조해 대형 화재의 위험이 여전히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10일까지 발생한 올해 산불은 417건으로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414건)보다 많다.기상청은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줄면서 산불 위험도도 높아지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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