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출산할 결심’[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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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엄마, 엄마는 왜 아이를 많이 낳았어?” 새 학년 새 반에 진급한 첫째가 새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첫날 내게 물었다. 올해도 반 친구들 가운데 외동인 아이들이 많았다면서. “엄마는 원래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서 많이 낳았어.” 내 대답에 첫째는 “신기하네”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첫째 말마따나 요새 나 같은 여성은 ‘신기한 여성’이다.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출생아 수를 포함한 ‘2022년 출생·사망 잠정통계’를 발표했는데, 출생아 수는 물론 합계출산율까지 또 1970년 집계 이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정부 속도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모양이다. 3일 보건복지부는 전문가들을 불러 긴급자문회의를 열었다. 지난달 27일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획기적인 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의 분위기는 단순히 인프라나 제도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만연한 ‘육아포비아’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모두 1970년 집계 이래 최저치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산되는 평균 아이 수로, 0.78명이라는 것은 여성 4명이 아이는 3명 정도만 낳는다는 뜻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낮은 수치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합계출산율 순위에서 줄곧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그냥 꼴찌가 아니라 압도적인 꼴찌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었다.

1996년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하고 출산장려정책으로 돌아선 이래 정부는 많은 육아 안전망을 도입했다. 육아휴직 등 일부 육아 관련 제도들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혜택 수준을 자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선뜻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설과 제도 측면에서 여전히 보강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으나, 요새는 그런 것과 별개로 육아 자체를 두렵게 여기거나 꺼리는 부모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주변 지인들로부터 임신과 관련한 고민 수리를 할 때가 많다. 주로 ‘언제 애를 낳아야 할까,’ ‘지금 낳아야 할까’와 같은 내용이다. 각자의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결국 비슷하다. “낳긴 낳아야겠는데 감히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지인 부부도 “임신 후의 삶이 무서워서 임신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않기에 난 그동안 부부가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거나 신체적 혹은 경제적 문제를 가진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지금껏 배우자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도 아닌데, 주변에서 아기를 낳은 뒤 겪는 여러 고충 이야기를 들으니 선뜻 ‘출산할 결심’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일종의 ‘육아포비아(phobia·공포증)’랄까.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임신·출산과 관련한 고민을 들어보면 이런 게 만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 후배는 “육아 상담프로그램이나 육아 관련한 사건, 사고 소식을 계속 보다 보면 ‘과연 이 사회에서 내가 온전히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며 “‘아는 게 병’이라더니 무서워서 아이를 더 못 갖겠다”고 하기도 했다.

요즘 육아에 대한 이런 인식이 비단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팽배한 건 아닌 듯하다. 가족 나들이를 나가면 종종 우리 애들에 대해 물어보는 어르신들을 만나는데, 네 명 다 내 아이라고 하면 대부분 “대단하다. 어떻게 넷을 키우느냐”며 깜짝 놀라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내 나이 또래 부모였던 1970년대에는 한국의 평균 합계출산율이 4~5명이었다. 내게 감탄하신 분들 대부분 자녀가 4명 이상일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분들이 내게 “대단하다”고 하시는 상황이 조금 우습지만 그만큼 그분들도 지금의 육아가 과거의 육아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하신다는 뜻일 터다.



● 인프라만큼 중요한 인식 제고
육아포비아에서 더 나아가 육아나 아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식음료점 등을 중심으로 일명 ‘노키즈존’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도 그런 방증이다.

내 지인 중에도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던 이가 있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떤 친구는 “책임질 존재가 생기는 것은 딱 질색”이라고도 했다. 최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연구팀이 20~34세 미혼 남녀 28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인생에서 결혼과 출산이 필수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남성 12.9%, 여성 4.0%에 불과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나 육아에 관해 부정적인 정도를 넘어 혐오에 가까운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꽤 자주 볼 수 있다. 언젠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상적인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한 다자녀 가정 가장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록 생활비가 빠듯해 가족 해외여행 한 번 가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래도 다자녀를 키우는 것이 행복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기대와는 달리 온통 부모를 비방하고 조롱하는 댓글이 달렸다는 것이다. ‘능력도 안 되면서 애는 왜 많이 낳았느냐,’ ‘거지 같이 산다는 이야기를 길게도 써놨다’ 등등.

이렇게 육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나 막연한 두려움이 만연하다 보니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최대한 미루고 단단히 준비해서 낳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지난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첫 아이 출산 평균연령은 33.5세였다. 합계출산율과 마찬가지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늦은 꼴찌다.

정부가 출산율을 제고하고 싶다면 인프라와 제도 구축 못지않게 인식을 전환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이를 가질지 말지, ‘출산할 결심’을 하는 것은 부모다. 부모가 아이 갖는 것을 무서워하고 꺼린다면 인프라와 비용을 쏟아붓는다 해도 그 효과는 기대만 못 할 것이다.

육아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산은 이미 태어난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도 중요하다. 아동과 육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출산율을 조금은 제고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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