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프리미엄’ 노리고 9000억대 불법 환치기…9명 무더기 기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6일 14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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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가상화폐가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국내와 일본, 중국 등지에서 환치기 범행을 벌인 일당 9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환치기 범행에 대해 검찰이 적발해 기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시중은행 지점장도 결탁해 ‘수수료 수익’ 올려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부장검사 이일규)는 6일 ‘9000억 대 해외 불법 송금’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외국환거래법위반 혐의 등으로 국내에서 수천억 원의 가상화폐를 매각한 뒤 해외로 송금한 A 씨(39) 등 8명과 범행을 도운 우리은행 전직 지점장 B 씨(52)를 기소했다.

이 사건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 머무는 공범들이 국내의 ‘김치프리미엄’을 악용해 불법 차익을 본뒤 대금을 다시 외국으로 송금한 범행이다. 일본과 중국에 있는 공범들이 국내의 공범들에게 가상화폐를 보내면, 국내 공범들이 가상화폐거래소를 통해 이를 매각한 뒤 대금을 다시 해외로 보내는 방식이다.

A 씨 등 4명은 지난해 9월부터 올 6월까지 일본에 머무는 공범들로부터 총 3398억여 원 어치의 비트코인을 넘겨받아 업비트 등 국내 거래소 4곳을 통해 매매했다. A 씨 등은 매각 대금을 여러 개 차명 계좌를 통해 세탁한 뒤 ‘시세차익’을 포함한 4957억 원을 일본으로 다시 보냈다. 이들은 마치 반도체칩과 금괴를 수입한 것처럼 허위 문서를 만들어 은행에 제출해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했다.

1년여 간의 범행을 통해 총 270억여 원의 차익을 올린 A 씨 일당은 이 중 223억 원을 일본 공범에게 송금한 뒤 47억 원의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이들이 범죄 수익으로 사들인 3억 원 상당의 외제차 3대, 2억 6000여 만 원 상당의 리조트 회원권, 5억 원의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 등은 모두 동결됐다. 검찰은 A 씨 등에 대해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동결해둔 자산을 처분해 국고로 환수할 계획이다.

중국계 한국인인 C 씨(33) 등 4명은 지난해 9월부터 올 6월까지 중국에 있는 공범들로부터 3500억 여 원의 가상화폐를 넘겨받은 뒤 이를 국내 거래소를 통해 매각했다. 이후 이들은 총 281회에 걸쳐 4391억여 원을 중국으로 보냈다. 중국인들을 대표로 내세운 페이퍼컴퍼니를 차린 C 씨 일당은 전자부품 수입 대금을 중국으로 보내는 것처럼 가장해 은행을 속였다.

C 씨 일당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수천억여 원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중 은행 지점장의 공모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C 씨 일당이 대부분의 범행 수익을 송금했던 우리은행의 지점장이었던 B 씨는 이들의 수상한 자금 거래를 눈감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B 씨는 C 씨 일당의 이상 자금 거래를 은행의 자체 감시 시스템을 통해 적발했지만 이를 본점에 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해당 지점에 검찰의 계좌추적 영장이 접수되자, 이 사실을 C 씨 일당에 알렸다. 그 대가로 C 씨는 현금 2400만 원과 상품권 100만 원을 받았고, C 씨의 지점은 해외 송금 수수료 21억 원을 챙기는 등 실적을 올렸다.
● 檢, 최초 자금원·수천억 종착지 계속 수사
검찰은 일본, 중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최초 자금원과 국내를 거쳐 해외로 송금된 수천억 원의 종착지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일본과 중국 등지에 머무는 공범들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앞으로 범죄인 인도 절차를 거쳐 국내로 데려오겠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대규모 자금을 ‘돈세탁’하기 위한 목적으로 범행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공범인 우리은행 지점장에 대해 해당 은행이 법으로 정해진 적절한 주의와 감독을 했는지에 대해 추가로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의 범행으로 한국 가상화폐 시장의 심각한 왜곡이 생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며 ”불법적인 방법으로 외환을 외국으로 송금함으로써 외환관리시스템에 심각한 부실을 초래하고 무역수지도 왜곡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어 “시중은행을 통해 1년여 동안 수천억원의 외화가 불법송금됐음에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외화 송금 시스템 운영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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