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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국민연금 더 내는 건 “NO” 아이들 위해서라면 “YES”

입력 2022-09-26 03:00업데이트 2022-09-26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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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공존을 향해〈1〉 연금개혁 ‘인식실험’ 해보니
‘보험료 10만원 더 내자’ 의견에 “혜택 별로 못받아” 고개젓던 2030
‘아이들-청년 위해 더 내자’ 바꾸니 “미래 세대 도와야” 절반 넘게 찬성
“세대간 통합-배려에 개혁 실마리”
“국민연금 보험료를 매달 10만 원 더 내시겠습니까.” 선뜻 ‘예’라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바로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10만 원’은 재정 고갈을 늦추기 위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5%로 높일 경우 가입자의 월평균 추가 부담액이다.

정부가 ‘2057년’으로 예측한 연금 재정 고갈을 막자는 데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개개인이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개혁 논의는 불가능하다. 표심에 급급한 정부와 정치권이 개혁 의무를 방기하는 사이 미래 세대는 엄청난 짐을 떠안게 됐다. ‘당장의 나’만이 아니라 ‘미래의 아이들’까지 생각해 짐을 나눠 들자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동아일보 취재팀은 이런 의문을 갖고 거리로 나섰다. ‘10만 원 더 내자’는 팻말을 들고 14일과 19일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다만 19일엔 팻말 앞에 ‘아이들과 청년 위해’라고 조건을 덧붙였다. 미래 세대와의 공존을 강조한 후 생각의 변화를 살펴보는 ‘인식실험’을 한 것이다.
#팻말1. ‘10만 원 더 내자’
14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정문 앞은 청년들로 붐볐다. 팻말을 보자마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았다. 한창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고 있을 20, 30대였다. 상당수는 기자가 입을 떼기도 전에 여론조사 패널에 ‘반대’ 스티커를 붙이고 지나갔다. 회사원 임승현 씨(32)는 “이미 월급에서 4대 보험료와 세금을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는데 뭘 더 내나”라고 반문했다.

대학생 윤모 씨(21)는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연금은) 우리를 위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안 내고 안 받고 싶다”고 했다. 2시간 후 결과는 찬성 46명, 반대 63명이었다. 이날 반대 의견을 낸 20, 30대 중엔 윤 씨처럼 국민연금 제도를 아예 폐지하자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주부 김모 씨(30)는 “연금 낼 돈으로 차라리 내 집 마련에 ‘올인(다걸기)’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 20, 30대는 보험료 인상의 수혜자이자 피해자인 ‘낀 세대’다. 노인이 된 2057년 이후에도 연금 재정이 남아 있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보험료를 올리면 은퇴 전까지 약 30년간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팻말2. ‘아이들과 청년 위해’
19일 오전 11시, 같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10만 원 더 내자’는 팻말을 들었다. 이번엔 팻말 앞에 ‘아이들과 청년 위해’라는 여덟 글자를 덧붙였다. 시민들의 반응은 닷새 전과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금수령 연기 안돼” 반대하다… “손주들도 받아야죠”에 공감


‘연금 3년 늦게 받자’ 팻말에 역정… “구직 힘든데 제때 줘야 생계 잇지”
찬 34-반 55… 스티커 부착 거부도… ‘미래세대 위해’ 문구 붙이자 반전
찬 57-반 25… “내가 양보할 수도”… 전문가 “세대간 고통분담 호소를”



많은 시민들이 아이들의 부담을 ‘함께’ 진다는 부분에 공감하며 찬성 스티커를 붙였다. 대학생 김모 씨(22·여)는 “미래 세대는 지구 온난화 등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많은데 이것(연금)만이라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한 살배기 자녀가 있다는 김모 씨(27)는 “제 아이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2시간 동안 설문을 진행한 후 나타난 결과는 놀라웠다. 찬성 67명, 반대 36명으로 닷새 전 결과에서 반전된 것이다. 프리랜서 최모 씨(29·여)는 “최근 일감이 줄어 반대하려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니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찬성했다.

14일에 비해 팻말의 내용이나 의미를 꼼꼼히 묻는 이도 늘었다. 회사원 서지오 씨(29)는 “왜 하필 10만 원이냐”고 물었다. 취재팀은 “소득 대비 연금 보험료의 비율을 현행 9%에서 15%로 올리면 재정 고갈을 20년 이상 늦출 수 있다. 직장인들이 매달 직접 부담하는 보험료를 기준으로 약 10만 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서 씨는 “작은 돈은 아니지만 아이 세대를 위해서라면”이라며 찬성 스티커를 붙였다.
#팻말3. ‘3년 늦게 받자’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종로3가 탑골공원 앞. 이번에는 여론조사 팻말을 설치하기도 전에 격한 고성이 날아왔다.

“젊었을 때 쎄(혀)가 빠지게 (보험료를) 냈는데 제때 줘야지, 이게 무슨 소리야!”


69세라고만 밝힌 한 남성은 이렇게 말한 뒤 ‘스티커를 붙이기도 싫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 노인이 화를 낸 이유는 ‘국민연금 3년 늦게 받자’는 취재팀의 팻말 때문이었다.

취재팀은 고령층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과 송해길 일대에서 연금을 받는 나이를 현재 65세에서 68세로 3년 늦춰 재정 안정에 기여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했다.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3년간 수령을 멈추자’는 조건을 제시하기로 했다.

팻말에 대한 시민들의 역정은 2시간 내내 계속됐다. “어느 단체에서 나와서 이런 조사를 하느냐”고 따져 묻는 노인이 많았다. 한 70대 남성은 “이러면 586세대가 연금 늦게 받는 거냐”라며 찬성 스티커를 붙이려다가 ‘본인도 3년 연금이 끊기는 조건’이라고 알리자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고령층 대다수는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상동 씨(67)는 “연금 없이는 한 달도 연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영선 씨(59·여)는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데 연금마저 없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는 찬성 34명, 반대 55명이었다. 스티커를 붙이길 거부한 노인들까지 합하면 실제 반대 비율은 훨씬 높았다.
#팻말4. ‘우리 손주들을 위해서’
“미래세대 위해” 강조하니 연금수령 연기 찬성 우세 19일 서울 종로3가에서 시민들이 ‘국민연금 3년 늦게 받자’는 팻말에 찬반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반대’에 쏠렸던 여론은 ‘손주들도 연금 받게’라는 문구(오른쪽 사진)를 추가하자 ‘찬성’으로 돌아섰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시간 후. 이번에는 팻말 앞에 ‘손주들도 연금 받게’라는 여덟 글자를 덧붙였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38.9%·2020년 기준)라는 걸 감안하면 양보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반응은 불과 2시간 전과 크게 달랐다. 임신 9개월인 딸(32)과 나들이하던 이은숙 씨(60·여)는 찬성 스티커를 붙였다. 이 씨는 “원래 ‘3년 늦게’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반대하려고 했지만 곧 태어날 손주를 위해서라면 양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천세형 씨(72)도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결과는 찬성 57명, 반대 25명.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전제조건이 없을 때와 크게 달랐다. 다만 정모 씨(70·여)는 “손주를 위해서라니 내 3년을 양보할 수는 있지만, 정말 살기 어려운 분들을 집중 지원하는 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팻말 실험 결과를 두고 국민연금 개혁을 바라보는 ‘2개의 마음’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개개인의 금전적 손실만 따져서는 개혁을 이루기 어렵지만, 미래 세대와의 고통 분담과 세대 간 통합을 강조하면 합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실험으로) 최소한 세대 간 연대의 희망은 본 것 같다”며 “정치인들은 표를 잃을까 봐 겁먹고 연금 개혁을 미루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미래 세대와의 고통 분담을 잘 설명하면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공존을 향해〉 시리즈 순서
〈2회〉연금 개혁에 실패한 2057년의 모습은?
〈3회〉세대 공존 가능한 연금개혁안을 찾아서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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