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경란’… 경찰국 신설에 집단반발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경찰국’ 갈등]
경찰서장들 ‘신설 반대’ 회의 강행, 총경급 간부 710명 중 189명 참여
경찰청, 회의 주도 총경 대기발령… 회의 현장 참석한 56명 감찰 착수
경감-경위들도 “회의 소집” 반발… 대통령실 “서장 회의, 부적절 행위”

‘전국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들이 23일 오후 회의를 마친 후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들은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와 (경찰청장 대상) 지휘규칙 제정은 역사적 퇴행으로 부적절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아산=뉴스1
‘전국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들이 23일 오후 회의를 마친 후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들은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와 (경찰청장 대상) 지휘규칙 제정은 역사적 퇴행으로 부적절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아산=뉴스1
경찰청이 23일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등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을 대기발령하고, 회의 참석 총경들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이에 일선 경찰서의 경감·경위급이 ‘전국 현장팀장 회의’ 개최를 예고하는 등 경찰국을 둘러싼 경찰 안팎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2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23일 오후 7시 반경 류 총경을 울산경찰청 경무기획정보화장비과 소속으로 대기발령을 냈다. 경찰청은 회의 시작 직전 경찰청장 직무대행(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명의로 주최 측에 ‘회의 개최 중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회의는 예정대로 시작됐고, 오후 4시경 ‘즉시 해산’을 재차 명령했음에도 회의는 오후 6시경에야 종료됐다.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된 이날 회의는 총경급 간부 710명 중 189명(현장 참석 56명, 온라인 참석 133명)이 참석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회의를 주도한) 류 서장이 두 차례 직무 명령을 따르지 않은 건 국가공무원법 57조 ‘복종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류 총경을 포함한 현장 참석자 56명에 대해선 해산 명령을 위반했다고 보고 감찰에 착수했다. 다만 온라인 참석자와 화분만 보낸 총경은 감찰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류 총경은 이날 “당시 서장들은 여행 허가를 받고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직무 중이 아니었다”며 국가공무원법 위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경찰 내부의 반발은 더 확산되고 있다. 서울 광진경찰서 김성종 경감(경찰대 14기)은 24일 경찰 내부망을 통해 30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경감과 경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현장팀장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경찰 내부망에도 “나도 대기발령시켜 달라”, “윤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한다” 등의 실명 게시글이 쏟아졌다. 그간 경찰국 반대에 적극 나서지 않던 일선 경찰들도 징계 조치에 대한 비판 움직임에는 동참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찰청의 조치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두고 “과거 경험으로 봐서 부적절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서장들이 상부의 지시까지 어겨가며 집단행동을 한 것에 다시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의 엄정 대응을 요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찰의 중립성을 논의하는 움직임에 전두환 정권식 경고와 직위해제로 대응한 것에 대단히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경찰청 “서장회의, 복종의무 위반”… 일선 경찰들 “나도 징계하라”


‘대기발령 vs 집단행동’ 전면전 양상

“전국 판검사회의 땐 징계 받았나”… 서장들, 협의회 구성-소송 검토
경찰 직급별 집단행동 방안도 논의… 경찰청, 총경 56명 감찰조사 착수
행안부 “총경 징계, 경찰청장 권한 장관이 관여할 수 없어” 입장 밝혀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에 집단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서장급(총경) 간부들과 경찰 지휘부 간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경찰 지휘부가 사상 초유의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58·사진)과 참석자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하자 총경급은 물론이고 일선 경찰들까지 내부 게시판을 통해 “나도 징계하라”며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경찰 내부에선 직급별로 협의체를 만들어 집단행동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어서 갈등은 당분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 “징계 불가피” vs “직무수행 중 아냐”

경찰청 지휘부는 23일 오후 2시부터 4시간여 동안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난 후 1시간 반 만인 오후 7시 반 류 총경을 대기발령했다. 지휘부의 중단 명령에도 회의를 강행해 국가공무원법 57조 ‘복종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류 총경은 경찰대 4기 출신으로 올 1월 울산 중부서장에 부임했다.

또 류 총경을 포함해 이날 회의에 참석한 총경 56명에 대한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25일로 예정된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와 류 총경의 회동도 전격 취소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회의를 만류한 윤 후보자의 e메일과 별도로 회의 시작 전 중지 명령, 회의 도중 즉시 해산 명령을 내렸지만 참석자들이 이를 어긴 것”이라며 “지휘부 명령에 불응했기 때문에 징계 수순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류 총경은 이날 밤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전국평검사대표회의 때 누가 징계를 당했느냐”며 “경찰을 우습게 알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경찰청 고위층으로부터 회의 후 결과를 윤 후보자에게 전해 달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대기발령이 났다. 그게 과연 윤 후보자 뜻이겠느냐”며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윗선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총경도 “국가공무원법 57조는 직무수행 중 상사 명령에 복종하라는 것인데, 회의는 휴일에 적법한 과정을 거쳐 열렸기 때문에 직무수행 중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해산 명령도 전달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회의엔 총경 역할을 하는 승진 후보자를 포함해 총경 710명 가운데 189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했다. 357명은 회의장에 지지 화환을 보냈다. 총경들은 회의 후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통제는 역사적 퇴행으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전국서장협의회’ 조직해 경찰국에 대응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마친 서장(총경)들이 회의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2.7.23 아산=뉴스1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마친 서장(총경)들이 회의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2.7.23 아산=뉴스1
류 총경을 대기발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4일 경찰 내부의 반발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울산 남부경찰서의 한 경위는 경찰 내부망에 “탄압받는 총경(을 위한) ‘법률 지원 돕기 모금운동’을 시작한다”는 글을 올렸다. 총경들은 회의 참석 사실을 공개하며 “명단을 조사할 것 없다. 나도 대기발령시켜 달라”고 연이어 적고 있다.

“장관과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청장을 원하지 않는다” “총경을 공격하는 후보자는 경찰청장이 아니다” 등 윤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글도 이어지고 있다. 총경들은 앞으로 전국서장협의회(가칭)를 조직해 집단행동을 이어 나가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류 총경은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뇌부가) 권한을 남용해서 징계하고 감찰조사를 하는 부분에 대해선 반드시 따져야 한다. (소송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법적 대응 방침도 시사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총경의 전보나 직위해제, 대기발령 임용권자는 경찰청장이기 때문에 행안부 장관이 관여할 수 없다”며 이상민 장관 및 행안부는 징계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행안부는 경찰국이 생기더라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총경 이상의 임명제청권만 행사할 뿐 징계권은 행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경란#경찰국#집단반발#전국 경찰서장 회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