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선족→한족→한국인 신분 세탁한 30년 전 중국 공안 살해범 송환 [사건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8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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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김모 씨, 1993년 복수심에 중국 공안 살해 후 도피 생활 이어가
한족으로 신분세탁, 위조여권으로 2012년 한국 들어와 일용직 전전
유전자 검사로 어머니 친자 인정받아 한국 국적 취득하기도
경찰, 공안 요청으로 2019년 체포…추방 금지 행정심판에 2년 6개월 소요
‘한 명 보내면 한 명 받는다’ 국제 공조수사 원칙 따라 향후 중국 도피사범 송환 기대

29년 전 중국 공안을 살해한 뒤 한국으로 도피했다가 체포된 중국인 김모 씨(49)가 지난달 2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송환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조선족인 김 씨는 1993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공안을 살해한 뒤 신분을 세탁해 2012년 국내 입국했다. 김 씨에 대한 체포 요청을 받은 경찰은 2019년 그를 검거했다.

중국에선 공안 살해범의 경우 사형을 선고받을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중국 송환을 피하기 위해 국내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김 씨는 범죄를 저지른 지 29년 만에 중국 공안에 넘겨지면서 도피 생활의 막을 내렸다. 중국 공안청은 이례적으로 전세기를 마련하고 대규모 인원을 파견하는 등 김 씨 송환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 복수심에 살인…신분세탁 후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까지 취득하며 도피

사건의 발단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남부경찰청 인터폴 국제공조팀에 따르면 김 씨는 1989년 중국 하얼빈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공안 A 씨에게 붙잡혀 현지 감옥에서 약 3년여를 복역했다. 자신을 체포한 것에 원한을 품은 김 씨는 1993년 출소하자 그해 11월 A 씨의 집으로 찾아가 흉기로 A 씨를 살해했다.

김 씨는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한족 왕 씨로 신분을 세탁했으며,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도 낳으며 살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공안 당국의 추적의 두려웠던 김 씨는 왕 씨 명의로 발급받은 여권으로 2012년 4월 한국에 입국했다. 김 씨는 한국에서 생활 중이었던 어머니에게 의지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대전, 제주 등의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2014년엔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도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별귀화는 △친부나 친모가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자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 △과학·경제·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해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 등에 해당한다. 그는 한국 국적자이던 어머니의 친자인 점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한국 국적은 허위 신분으로 취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중에 박탈됐다.

● 체포부터 행정재판 거쳐 2년 6개월 만에 송환

한국으로 도피하는 과정에서 중국 내 공항 폐쇄회로(CC)TV에 찍힌 김 씨의 사진이 추적의 단서가 됐다. 김 씨가 한국으로 출국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중국 공안은 한국 경찰에 김 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을 요청했다. 통상 한국에서 90일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의 경우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얼굴 사진을 등록해 보관한다. 중국 공안은 안면인식기술을 통해 왕 씨가 신분을 세탁한 채 한국에 입국한 김 씨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리 경찰에 전해왔다.

경기남부경찰청 인터폴 국제공조팀은 이를 토대로 김 씨의 소재지 및 신원 파악에 나섰다. 경찰 조사결과 당시 제주 서귀포시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왕 씨가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도피한 김 씨라는 점이 확인했다. 경찰은 2019년 11월 김 씨를 현장에서 체포해 대전출입국외국인사무소로 넘겼다. 김 씨는 조사에서 공안 살해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김 씨가 국내 입국 과정에서 서류를 위조한 혐의 등을 적용해 그를 중국으로 추방하려 했으나 즉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씨가 강제퇴거 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안 살해범은 통상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김 씨는 어떻게 해서든 송환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올해 1월 대법원이 심리불속행기각 판결을 내리며 김 씨는 끝내 중국 땅을 밟게 됐다.

● ‘한 명을 보내면 한 명을 받는다’ 국제공조 수사 원칙

국제공조 수사에는 ‘한 명을 보내면 한 명을 받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범죄자를 잡는다’는 대원칙엔 각국 경찰이 모두 동의하지만 해외 도피사범을 검거하는 건 꽤나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국의 요청을 받고 붙잡아 송환하는 이가 있어야 나중에 상대국에서 도피 중인 범죄자도 검거를 요청해 넘겨달라고 할 수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인터폴 국제공조팀 관계자는 “오랜 세월 도피를 이어가던 범죄자를 잡아 본국으로 돌려보내면서 향후 중국에서 도피 중인 한국인 범죄자를 데려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중국 공안도 이번 범죄자 송환에 공을 들였다. 김 씨 송환을 위해 이례적으로 전세기를 띄우고 공안 7명을 파견했다. 통상 송환 절차에는 공안이 2~3명 파견된다. 이는 중국 공안이 그만큼 공안 살해 범죄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재작년, 작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국제 공조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팬데믹이 완화하면서 송환자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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