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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어엿한 한국인이 될래요” 고려인 4세 이고리의 꿈[공존: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입력 2022-01-19 03:00업데이트 2022-01-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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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다리’ 없는 이주민 아이들
할아버지는 조선소서 일하고 엄마는 공장 취업
16세 소년 이고리, 통역사 목표로 학업 매진

지난해 12월 경기 안산시 선일중학교 교실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서 있는 고려인 4세 이고리.
“어엿한 한국인이 될래요”… 고려인 4세 이고리의 꿈


“저는 잘할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믿어요.”

지난해 12월, 경기 안산시 선일중학교의 한 교실. 선생님과 고등학교 진학 상담을 마친 허가이 이고리(16)가 당차게 말했다. 이고리는 특성화고가 아니라 일반계고를 지망했다. 이고리가 1지망으로 정한 학교는 성적이 중상위권인 학생들이 많이 진학한다. 이고리의 목표는 한국외국어대나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합격. 이고리는 러시아어 통역사로 활약할 꿈을 꾼다.

이고리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4세다. 세 살이 되던 2009년, 엄마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왔다. 해외동포 자녀는 특성화고를 선호하는 편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취업을 빨리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고리는 애초부터 일반계고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고리에게 경쟁이 덜한 다른 학교를 추천했었다. 이고리가 한국인 아이들에게 밀려 내신에서 불리할 수 있어서다. 이고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학습 분위기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꼭 합격하고 싶었다. 이고리는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을까. 일감 끊길 걱정 없는 직장을 찾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와 엄마가 그토록 원하는 ‘코리안 드림’을 이뤄 더 나은 삶을 향한 ‘사다리’에 오를 수 있을까.

○ 한국인의 조건
“한국 전통 무술이어서 태권도가 좋다”는 이고리. 중학교 1학년 때 안산시가 개최한 태권도 한마당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허가이 이고리 제공


이고리는 꿈에 부풀다가도 외삼촌을 생각하면 멈칫한다. 외삼촌은 우즈베키스탄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나와 한국에서 러시아어 통역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국인 입국이 줄어 일감이 끊겼다. ‘대학을 나온 삼촌도 힘든데, 대학조차 안 나오면 더 힘들겠구나.’

불안정한 체류 자격도 ‘이방인’이란 꼬리표였다. 지난해까지 이고리 같은 중앙아시아 국적 고려인 동포는 한국 고교나 대학을 졸업해야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고리는 아직 고교 졸업 전이라 엄마의 가족으로서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아 지냈다. 이 비자로는 체류 기간을 1년마다 연장받아야 했다.

경기 안산시 선일중학교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이 학교 3학년 아딜벡(왼쪽)과 이고리.


이고리에게 올해 선물같이 체류 자격이 주어졌다. 법무부가 이달 3일부터 국내 초중고교에 다니는 미성년 고려인 동포에게 F4 비자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고리는 여러 편견과 싸워야 한다.

“넌 지금 군대 안 가도 되는데 왜 비자 바꾸려고 하냐.” “외국인 전형으로 대학 쉽게 가서 좋겠다.” 친구들은 질투 반, 부러움 반이 담긴 농담을 하곤 한다. 이런 말을 들을수록 이고리는 굳게 결심한다. ‘반드시 어엿한 한국인이 돼야지.’ 이고리는 F4 비자를 받아 병역의무가 생기면 꼭 해병대에 가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가족 소망 짊어진 이고리
세살때 엄마따라 한국으로… 미성년 고려인 동포에게
올해부터 F4비자 체류자격, 주변 우려에도 일반고 진학
대학졸업하고 반듯한 직장… 미래의 땅에 자리잡고 싶어

○ 차가운 ‘할아버지의 땅’



이고리의 할아버지인 고려인 2세 김게오르기 씨(65)도 손자의 고민을 알고 있다. 평범한 한국인으로 좋은 직장을 가지려는 손자의 분투를 이해한다. 게오르기 씨도 고향에선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선 바닥부터 시작했다.

게오르기 씨는 이고리가 한국에 오기 1년 전인 2008년 한국 땅을 밟았다. 51세, 남들은 은퇴를 꿈꿀 나이였다. 하지만 아내 이로자 씨(62)가 당뇨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치료가 어려웠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주민에게 배타적으로 변해 갔다. 이고리 가족은 이방인처럼 소외됐다.



그는 ‘할아버지의 땅’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더 고향 같은 한국으로. 타슈켄트국립사범대 역사학과 졸업장, 교장까지 지낸 교육자로서의 커리어, 방 4개짜리 아파트, 자동차, 별장까지 모두 가족을 위해 버렸다.

첫 일터는 부산의 조선소였다.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3시간, 20kg에 가까운 장비를 들고 일했다. 매일 밤 손이 저렸다. 끙끙 앓다 몇 달 만에 일을 그만뒀다.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는 변변한 일을 구하기 힘들었다.

이고리의 할아버지 김 게오르기 씨(왼쪽)와 할머니 이 로자 씨(왼쪽 사진). 함께 여행을 떠난 이고리의 할아버지와 이고리 사촌동생, 할머니 그리고 이고리(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이고리 제공


“우즈베키스탄에선 펜보다 무거운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여기 와선 돌과 쇳덩이를 들었어요. 식용 개 축사에서 일하던 시절은 죽을 때까지 못 잊습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건 무너진 자존심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이주노동자 김 씨’가 됐다. 조선소를 그만두고 일했던 총각무 농장에서 농장 주인이 퍼붓는 욕설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은 할아버지의 땅’이라는 가족들 말을 듣고 자랐다. 자식들에게도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국이 우리의 미래다.”



딸 옥사나(42) 씨에게도 ‘미래의 땅’ 한국은 녹록지 않았다. 옥사나 씨는 우즈베키스탄 현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그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처럼 몸이 고된 일뿐이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옥사나 씨는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F4 비자를 받았다. 취업은 가능하지만 청소 등 단순노무는 할 수 없었다.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으면 이런 일을 구할 수 있지만 본국의 가족을 데려올 수 없다. F4 비자로 이고리와 함께 한국에 온 옥사나 씨는 인력사무소 수십 곳을 돌아야 했다.

사정을 딱히 여긴 안산의 한 공장 대표가 몰래 일을 줬다. 단순작업에 임금도 낮아 한국인들은 기피하는 일이었지만 감사했다. 옥사나 씨는 출입국사무소에서 미등록 노동자 단속을 나왔을 땐 다른 외국인 동료들과 창고에 숨었다. 적발되면 비자가 취소돼 출국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다. 어느 날 상사가 그의 엉덩이를 쓱 만지고 지나갔다. 그는 당장 쫓아가 서툰 한국어로 소리 질렀다.

“나도 열심히 일해요. 내가 외국에서 왔다고 이렇게 해요? 나도 아빠 있어요. 경찰에 신고해요?”

지난해 11월 함께 경기 안산시 원곡동의 한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있는 이고리네 가족. 왼쪽부터 이고리 어머니, 외할아버지, 이고리, 그리고 외할머니.


‘한국인의 조건’을 갖출 기회가 없진 않았다. 옥사나 씨는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을 이수하면 영주(F5)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456시간 동안 교육을 받고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따면 된다. 낮엔 공부하고 밤에는 아이를 돌보며 일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장 생계가 급했다.

“일하고, 이고리 밥 주면 주말에 공부할 시간이 딱 4시간 있었어요. 밤에 일하고 집에 와서 밤새 공부해서 이고리가 어렸을 때 혼자 컸어요.”

네 가족은 입국한 뒤 5년이 넘도록 원룸살이를 했다. 옥사나 씨가 공장 동료였던 한국인 남편과 2013년 재혼한 뒤 분가했지만 지금도 월세로 산다. 이고리 방에 있는 가구는 이고리 무릎에도 닿지 않는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그래도 이고리는 긍정한다.

“바닥에서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 ‘진짜 책상’에 앉게 됐을 때 얼마나 더 감사하겠어요.”
○ 26년을 이방인으로 살다
지난해 10월 비자 체류기간 연장을 마친 어티겅도야 씨가 서울 양천구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을 나와 길을 건너고 있다.


26년째 한국에서 이방인처럼 살고 있는 치메도르치 어티겅도야 씨(60) 가족도 비슷하다. 모국에서 좋은 학벌과 직업을 가졌어도 한국에선 저소득층을 못 벗어난다.

어티겅도야 씨는 1996년 세 살, 열세 살이던 두 딸을 두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몽골에서 사범대를 졸업하고 대학 강사로 일했지만 월급만으로는 두 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가 힘들었다.

어티겅도야 씨는 가난을 탈출하려고 관광비자로 한국에 왔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있는 줄도 몰랐다. 그는 서울 광진구 미싱 공장에 취업했다. 월급은 몽골로 부치는 생활비와 월세로 다 나갔다. 관광비자 연장을 위해선 3개월마다 몽골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비행기표 살 여유가 없었다. 결국 미등록 신분이 됐다.

매일 머리를 맞으며 일했다. 공장 앞 공중전화에서 두 딸과 통화하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시비를 거는 한국인 동료들의 텃세가 심했다. 그는 6개월 만에 공장을 나왔다.

도움을 찾던 그를 구원한 건 역설적이게도 남을 돕는 일이었다. 그는 월 40만 원을 받으며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에서 통역을 시작했다. 2년간 전국을 돌며 임금 체불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 남편에게 맞은 결혼이주 여성들의 통역을 맡았다.

1999년 선교회가 재한몽골인학교를 세우면서 그도 선생님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안정적으로 일할 곳이 생기자 비행기표 살 돈을 모아 몽골로 떠났다. 관광비자를 재발급받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관광비자 연장을 위해 3개월마다 입국과 출국을 반복했다. 그러다 2005년 특정활동(E7) 비자를 받게 됐다. 재한몽골인학교가 공식 학교로 인가받으면서 그도 외국인 전문인력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국에 산 지 10년 만에야 안정적으로 머물게 됐다.


미등록 대물림 위기 어티겅도야
26년전 지하방 미등록자로 시작, 교사된 어티겅도야
이번엔 딸-손자-손녀가 ‘불법체류자’ 될 위기에

미싱공장-통역-교사 거쳐 전문인력인정 E7비자 받아
美서 석사 받고 한국에 온 딸, 신고없이 알바했단 이유로
직장 잃고 비자까지 만료… 불안정-저소득 신분 악순환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비자 체류기간 연장을 마친 뒤 카페를 찾은 어티겅도야 씨. 출입국사무소에서 “여기만 오면 긴장이 돼 손이 벌벌 떨린다”던 그는 맞은편 카페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미소를 되찾았다.


어티겅도야 씨는 F5 비자를 취득할 생각도 했지만 소득이 발목을 잡았다. F5 비자를 취득하려면 연 소득이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 이상이어야 한다. 지난해 기준 약 3788만 원이다.
○ 3대째 대물림되는 미등록 굴레
미싱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어티겅도야 씨(오른쪽). 어티겅도야 씨 제공


지난해 12월 어티겅도야 씨는 서울 광진구의 한 지하철역 근처 골목을 굽이돌아 걸었다. 15분가량을 걷자 그의 옥탑방이 나타났다. 계단은 난간을 잡지 않고서는 오르기 힘겨울 정도로 가팔랐다. 옥탑방 천장은 바람이 많이 불면 깨질 듯 흔들린다. 그래도 어티겅도야 씨에게 이 집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살게 된 ‘집다운 집’이다.

몽골학교 학생들과 어티겅도야 씨(아래줄 가운데). 어티겅도야 씨 제공


“옛날엔 지하방 원룸 살았어. 냄새도 엄청 났고 벌레들이 기어 다녔어. 어떨 때는 벌레가 귀로 들어가기도 했어.”



‘미등록에서 E7 비자’로, ‘지하방에서 옥탑방’으로, ‘미싱 공장에서 몽골학교’로…. 어티겅도야 씨는 피나는 노력으로 체류 자격을 얻어냈다. 집도, 직장도 치열하게 지켰다.



하지만 어티겅도야 씨의 얼굴에 진 그늘은 여전하다. 26년간 겪은 불안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첫째 딸 자야(가명·39) 씨와 손자손녀 때문이다.

어티겅도야 씨(오른쪽)와 그의 첫째 딸. 어티겅도야 씨 제공


자야 씨는 몽골 현지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CALMUS)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정착한 엄마와 여동생을 따라 2016년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제대로 공부해 세계에 알리겠다는 꿈이 컸다.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미국 유학까지 마친 자야 씨는 예원예술대 석사 졸업 뒤 2년간 한국에서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하루에 세 곳씩 지원서를 넣었다. 직군도 가리지 않았다. 자야 씨는 몽골어, 중국어, 영어, 한국어까지 4개 언어에 능통하다. 하지만 외국인인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올해 초에야 스마트폰을 수출하는 무역회사가 그를 채용했다. 그도 외국인 전문인력이 받는 E7 비자를 받게 됐다. ‘안정적으로 국내에 머물 수 있게 되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자야 씨가 E7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출입국사무소에 과거 소득 자료를 제출할 때였다. 사무소 직원은 자야 씨가 과거 유학(D2) 비자를 받은 채 아르바이트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자야 씨는 D2 비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결국 자야 씨는 첫 출근도 못 한 채 직장을 잃었다. 그의 비자가 만료되면서 남편과 두 아이의 동반(F3) 비자까지 잃었다. 자야 씨 부부와 아이들 모두 미등록 위기에 처했다. 그는 체류 자격을 얻으려 행정소송 중이다.

어티겅도야 씨(왼쪽)와 그의 손자 유루티츠. 어티겅도야 씨 제공


어티겅도야 씨의 시름도 깊어졌다. 손자 유루티츠(‘우주’라는 뜻의 몽골어)는 세 살 때 한국에 와 어느덧 아홉 살이다. 손녀는 2020년 한국에서 태어나 쭉 자랐다.

“애들은 한국이 자기 나라나 다름없어. ‘나는 몽골 안 가고 싶어요. 한국에 있고 싶어요’라고 해. 매일 밤 하나님한테 기도해. ‘욕심 안 부릴 테니까 우리 딸이랑 손주 한국에 있게 해 주세요.’”
지난해 10월 어티겅도야 씨(오른쪽)가 함께 E7 비자 체류기간을 연장한 재한몽골인학교 선생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저수지 아이들’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안산에서 다문화교회를 운영하는 박천응 목사는 이고리, 유루티츠 같은 이주민 자녀들을 ‘저수지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물려받아 한국 사회의 저층에 고인다는 의미다.

“부모 세대는 본국에서 유능해도 한국어나 체류 자격 문제로 대부분 단순 노동에 종사합니다. 경제적 문제로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죠. 공단 지역 노동자 자녀는 공단 인력의 ‘저수지’에 고여요. 부모에 이어 공단 노동자가 되죠.”

안산의 한 고등학교 교사도 저임금 일자리만 바라보며 ‘사다리’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을 걱정했다. “고려인 아이들에게 ‘뭐 하며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공장에서 일하며 돈 벌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꿈을 키우는데, 마땅한 롤 모델이 없는 거죠.”

이주배경 아동들이 저수지 아이들로 남지 않으려면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중앙아시아 출신 미성년자 고려인 동포들에게 F4 비자를 주기로 하면서 국내 초중고교에 재학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미취학 아동, 경제·언어적 문제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은 제외됐다.

중앙아시아와 달리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동포에게는 조건 없이 F4 비자가 발급된다. 고려인지원센터 ‘너머’의 김준태 서울상담소장은 “국내 고용 상황이나 행정 편의 때문에 국적에 따라 동포 비자를 달리 주는 것은 차별”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이고리가 하교를 위해 신발을 신고 있다.


자녀들만큼은 저수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쓴 게오르기 씨와 어티겅도야 씨의 바람은 이뤄질까. 지난해 11월 안산의 한 식당에서 가족들과 모인 게오르기 씨는 담담히 말했다.

“자식들 편히 살면 난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내 딸이 잘살기 위해서는 이고리가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돼.”

이고리만은 원하는 일을 하며 꿈을 이루기를. 그게 이고리 가족이 ‘사다리’를 오를 마지막 기회다.

이고리는 일반고 진학을 시작으로 통역사의 꿈을 향해 간다. 미국 유학까지 했지만 취업이 좌절된 자야 씨처럼 ‘사다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고리는 마음이 흔들릴 때 자기 이름의 뜻을 떠올린다. ‘이고리’는 그리스어로 ‘지킨다’는 의미다.

“제 가족을 지키는 강한 사람이 될 거예요.”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기사 취재: 신희철 김재희 남건우 기자
▽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남건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편집: 한우신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이트 개발: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동영상 편집: 남건우 기자 박세진 PD 안채원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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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콘텐츠팀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남건우 기자 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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