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건강하고 부유해진 젊은 노인들, 소비패권 쥐게 된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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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니어 트렌드 ‘에이지 프렌들리’
‘영올드, 액티브 시니어, 욜드…젊은 노인의 전성시대 예고
욜드세대, MZ세대보다 돈도 소비력도 인구도 많아
“고령자 배제하는 기업과 사회는 성장할 수 없다”


매년 급속도로 늘어나는 ’젊은 노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과거보다 더 건강하고 부유하며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머릿수가 많다. 산업계는 이들이 앞으로 세계 시장을 쥐고 흔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매년 급속도로 늘어나는 ’젊은 노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과거보다 더 건강하고 부유하며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머릿수가 많다. 산업계는 이들이 앞으로 세계 시장을 쥐고 흔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령화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급격하게 늘어난 수명과 출산율 저하, 베이비붐 세대의 증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2015년 6억 17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5%에 달했던 세계 노인 인구 비율은 2050년에는 17%인 16억 명으로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메사추세츠 공대(MIT) 에이지랩의 창시자 조지프 F 코글린 박사는 이를 “마치 대륙 하나가 바닷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장수경제학 2017, 한국판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부키)

○ “노인은 무능하고 궁핍하며 이기적이다?”
인구구조 변화는 세계 질서를 다르게 기능하도록 한다. 소비자 요구도 하루아침에 변해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소비가 급격하게 나타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전국 최대 안경체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돋보기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성인용 기저귀가 아기용보다 많이 팔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여졌다. 나이가 들면 무능하고 쇠약해지며 궁핍하고 이기적이 된다는 이미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코글린 박사는 연령차별로 이어지는 이런 편견에 찬 시각을 ’노령담론(narrative of aging)‘이라고 불렀다. 노인학계에서는 노령담론이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지구를 지배해왔다고 본다.

노화를 보는 사고방식이 틀에 갇혀 있어 실패를 부른 사례로는 통조림기업 하인즈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거버 유아식을 먹는 노인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1950년대 하인즈사는 노인들을 위한 통조림 영양식을 개발해 출시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거버 유아식을 먹는 노인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1950년대 하인즈사는 노인들을 위한 통조림 영양식을 개발해 출시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 하인즈의 노인 영양식이 처참하게 실패한 이유
’거버 유아식을 자신이 먹기 위해 사가는 틀니 노인이 늘고 있다‘.

하인즈사는 1955년 이런 보고가 이어지자 노인을 위해 미리 으깨놓은 영양식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타임지는 ’노인을 위한 음식제품군이 없다‘며 ’하인즈가 60세 이상 노인을 위한 맛있고 싸고 영양가 좋은 57가지 통조림식품을 새롭게 선보인다‘고 알렸다.

당시 산업계도 늘어가는 고령인구를 노다지라고 여겼다. 타임지 기사는 “미국에는 60세 이상이 2300만 명에 이른다”며 “아기는 대략 2년 동안 이유식을 먹지만 노인은 15년 이상 이 제품을 소비할 것”이라고까지 전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하인즈는 신상품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지만 매대에 쌓인 통조림에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골적으로 치아없는 노인들을 위한 저렴한 통조림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거버의 유아식을 사는 노인들은 “손주 먹일 것’이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슈퍼마켓 매대에 전시된 이 통조림을 바구니에 담는 순간 ”나는 가난하고 이빨도 성치 않은 불쌍한 노인네‘라고 주변에 외치는 것과 같다.

이런 실패의 원인은 고령자에 대한 편견에 휩싸여 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은 자신이 노인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시장에서 자신들의 욕구에 맞는 대접을 받고 싶기는 하다. 어찌보면 모순된 이들의 욕구를 읽지 못한다면 아무리 공을 들인 상품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 “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왔다”
시대는 바뀌었다. 세계의 석학과 언론이 나서 시니어세대를 주목하라고 외치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대 노화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1916~2001)은 1975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55세부터 70대 중반까지를 ’젊은 노인‘(young old)으로 구분했다. 저서 ’나이 듦의 의미‘(The Meanings of Age, 1996)에서는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이 젊은 노인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때 영 올드를 줄여 ’욜드(YOLD)세대‘라 불렀고 이는 곧 세계적인 용어가 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젊은 노인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The decade of the ’young old‘ begins)”며 더 건강하고 부유해진 시니어세대가 앞으로 소비재, 서비스, 금융시장을 휘두를 것으로 전망했다. 주거 생활 건강 일자리 취미 인간관계 모두에서 고령 친화적 기업만이 성공한다고 단언했다.

미국 와튼 스쿨의 마우로 기옌 교수는 2020년 저서 ’2030 축의 전환‘에서 60세 이상이 전세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며 ”향후 10년간 세계의 중심축이 고령자와 여성,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수경제학에서 코글린 박사도 노령담론이 지배하는 기업현실에 문제제기하며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것은 수많은 기업과 언론이 젊고 역동적인 MZ세대를 공략하려 노력하지만 실제로 돈이 있고 소비력이 크며 인구가 많고 보유자산도 많은 세대는 욜드세대라는 것이다.

○ 뉴 시니어 트렌드는 ’에이지 프렌들리‘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센터는 최근 발간한 책 ’2022 대한민국이 열광할 시니어 트렌드(비즈니스북스)‘에서 ’에이지 프렌들리‘(Age Friendly)’를 새로운 트렌드로 꼽았다. 에이지 프렌들리란 고령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며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춰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과 사회의 철학을 말한다.

이동우 고령사회연구센터장은 ”앞으로 에이지 프렌들리 기업이나 브랜드, 도시와 지자체만이 성장하는 시니어 시장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며 ”이제 고령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기업과 사회가 절대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5070세대를 새로운 소비권력으로 보고 이들의 취향과 욕망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책은 시니어 세대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주거환경, 문화생활, 자산 관리와 재테크, 건강과 취미,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융합 학문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 빨리 늙어가는 한국, 급속도로 달라진 시니어들
‘젊은 노인 전성시대’는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중이고 은퇴세대의 상대적 빈곤율도 세계 1위(43.4%)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자. 2021년 3월말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자산은 5억 253만원으로 전년대비 12.8% 증가했다. 이중 부채 8801만원을 제하면 순자산은 4억 1452만원이 된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5억 6741원으로 가장 높고 다음이 40대(5억 55370만 원), 60대 이상(4억 8914원) 순이다.

복지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20노인실태조사’ 결과도 희망적이다(그래픽 참조). 2008년부터 3년마다 이뤄진 조사에서 첫해인 2008년과 2020년의 고령자는 확연히 달랐다. 예컨대 개인소득은 연간 700만 원에서 1558만 원으로 늘었는데,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자산소득 비중이 늘어난 반면 가족의 보조를 뜻하는 ‘사적이전소득’은 46.5%에서 13.9%로 줄었다. 근로나 사업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버는 비중이 확연히 늘어난 것이다.

이밖에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낀다는 답변이 급격히 늘었고 학력 수준도 확연하게 높아졌다. 정보화기기 사용능력을 가늠케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는 2011년 0.4%에서 56.4%로 급증했다. 2020년부터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순차적으로 고령자인구에 편입되면서 고령자들의 변모는 더욱 확연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 기업의 사활, 시니어 시장 변화 읽어내는 데 달렸다
시니어의 영향력이 가장 실감나는 분야는 문화 쪽이다. 7080 가요붐, 트로트 열풍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확인된다. 시니어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광고하는 상품을 사들이고 좋아하는 스타에게 선물, 즉 ‘조공’을 바치기도 한다. 유튜브 시장에서도 50대 이상은 가장 많은 이용자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은 5060세대의 자산을 유치하기 위해 이미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통계청 장래가구추계는 현재 167만인 고령자 1인가구가 2047년 405만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주거와 식재료, 각종 서비스 등에서 관련시장이 커질 것이다. 인터넷 쇼핑과 검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실버 서퍼’가 늘고 로봇과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정보화 기술의 최우선 수혜자도 고령층이 될 것이다.

앞으로 기업의 사활은 이같은 시니어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공략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달렸다. 이미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따라 교육과 치안, 국방, 의료 등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아닌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 초고령 사회, 어떤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소비자로서의 고령자만 논하다보면 다른 걱정들도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2025년이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어떤 생태계를 조성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고령화는 시장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인사철, 너도나도 ‘젊은 조직’을 강조하며 사람을 잘라내는 풍조가 만연하는 현실이다. 인적자원이 한정된 나라에서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의문이다. 인구의 5분의 1이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사회에서 과연 활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고령자들의 역량과 에너지를 조화롭게 살리며 공존할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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