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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말기암 투병 윤성근 판사 “법원은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법조 Zoom In]

입력 2021-12-07 17:37업데이트 2021-12-08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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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속하고 감금하는 등 시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을 왜 국민이 선거로 선출하지 않은 법관에게 맡겼을까요?”

말기 담도암으로 투병 중인 윤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전 서울남부지방법원장·62·사법연수원 14기)의 언론 기고문, 강의록 등을 모은 칼럼집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 중 2015년 7월 윤 부장판사가 양천구청에서 한 특강 ‘법원은 어떻게 시민을 보호하는가’ 강의록에 나온 질문이다.

윤 부장판사는 이 질문에 대해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공직자가 다수의 뜻에 따라 국가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구속하고 재판한다면 당초 정치적 목소리가 없었던 소수는 어디에서도 보호받기 어렵다”며 “아무도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다수로부터 배척당하고 여론으로부터 공격받아 아무도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때, 그런 마지막 순간에도 법원은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여러분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해준다. 이것이 법원을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라고 말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칼럼집은 연수원 동기들이 병원비를 모으고자 힘을 합쳐 지난달 17일 전자책을 낸 뒤 종이책을 출간했다. 쉬운 언어로 법치주의에 대한 고찰을 담은 글을 사회에 전하고 윤 부장판사의 병원비에 보탠다는 취지였다. 윤 부장판사는 법치주의에 대한 생각 외에도 수사권 조정이나 전관예우, 판사의 임명 방식,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한 생각을 쉬운 말로 풀어나갔다.

● “‘국민의 명령’이라는 사람은 국민에게 고통을 줘”


윤 부장판사는 칼럼집을 통해 재판과 ‘국민의 명령’, 그리고 법치주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아래는 그가 “재판이란 헌법과 법률, 법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하는 것이며 다수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법원이 왜 국민의 의지에 따라 재판하는 것인지 설명한 부분이다.

“역사적 검증을 거쳐 ‘적어도 이 부분은 진정한 국민의 뜻으로 확인됐다’고 널리 받아들여진 원칙과 가치가 존재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권보장과 같은 핵심적 이념들이다. 이에 따라 일정한 중요 공직은 선거를 통해 선출한 뒤 선거에서 확인된 국민의 뜻을 수행하게 하되, 사법부는 선출하지 않은 공직자에게 맡겨 개별 선거로 움직일 수 없는 핵심적 원칙과 가치를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법원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 “과거 ‘이것이 국민의 명령이다’라고 선언했던 사람들은 좌파에도 우파에도 있었다”라며 “그들의 공통점은 전체주의자였으며 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줬다”고 꼬집었다. 여론의 뜻에 따라 사법권을 휘두르는 ‘인민재판’에 대해서는 “역사의 고비마다 특별법원이 등장했다. 나치가 설치한 ‘인민법원’, 한국의 유신헌법에 따라 설치된 ‘비상군법회의’ 등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이 희생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 부장판사의 동기 오세빈 전 서울고등법원장은 서평에서 “윤 판사가 법치주의에 대해 내린 정의는 다수당의 국회 결의에 근거한 무조건적 통치방식이 아니라 ‘인간 존엄과 인권의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법의 정신’에 따르는 사회”라며 “‘입법만능주의’에 빠져 국민의 생활방식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왜곡시키는 다수당의 횡포에 대하여 내리는 준엄한 꾸짖음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오 전 법원장은 또 “선출된 권력이 입법과 행정에 더해 사법 권력까지 장악하게 되면 오직 다수의 결정이 무제약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비민주적 전체주의 사회로 전락한다”고 덧붙였다.

● “대통령 임기 중 대법관 임명 과반 안 돼”


윤 부장판사의 칼럼집에는 2019년 7월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사법권 독립을 제대로 보장하려면…’이라는 제목의 글도 포함됐다. 그는 칼럼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 중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11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 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래는 대법관 임명에 관한 그의 설명이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할 수밖에 없지만 당파적으로 임명된다는 오해는 불식시켜야 한다. 현재 관행에서는 대통령 임기 후반부로 가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 법관 과반수가 현직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으로 채워진다. 이는 사법부 독립에 대한 위협이다. 어느 대통령의 임기 중에도 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과반이 될 수 없게 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고위 법관은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사회와 사법부가 맞닿아 있고, 국민의 뜻이 사법부 구성에 반영되는 거의 유일한 지점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과 국회의 인준, 대통령의 임명 절차”라며 “우리 헌법이 입법·사법·행정 3부가 함께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한 행정부, 한 정권이 지나치게 많은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 “출근하는 것이 기대됐다”


책에는 동기 및 배석 판사들의 편지도 담겼다. 디지털 칼럼집과 종이책을 펴낸 윤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동기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격려사를 통해 “2000년 초임 부장판사로 대구지법에서 반갑게 만났다. 옆방에서 난제 사건을 토론하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며 “근심을 버리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썼다.

연수원 동기인 김창보 전 서울고등법원장도 격려사를 통해 “법관 생활을 같이 하며 40년을 가깝게 지내왔다”며 “연수원 시절 나는 수업하는 범위 외의 것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는데 윤 부장판사는 미국법 원서를 읽으며 홀로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윤 부장판사와 서울고법 같은 재판부에서 3년을 근무한 정수진 서울고법 판사가 쓴 ‘윤 원장님께’라는 제목의 편지도 책에 실렸다. 정 판사는 “윤 원장님과 일하는 동안 매일매일 출근하는 것이 기대될 정도로 마음에 근심 하나 없이 행복했다”며 “합의할 때도 재판할 때도 편안하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었고 점심 식사 이후 법원을 산책하며 나무와 꽃 이름 및 특성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셔서 ‘원장님의 지식의 한계는 과연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얼른 쾌차하셔서 칼럼을 계속 써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윤 부장판사가 처음 부장판사가 됐을 때 배석 판사를 맡은 박영호 수원지법 평택지원장도 ‘윤성근 원장님을 추억하면서’라는 글을 전했다. 박 지원장은 “2000년 초임 부장과 초임 배석 관계로 처음 연을 맺었다. 초임 부장과 초임 판사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고 칭할 정도로 특수한 관계였기 때문에 윤 원장님의 모든 것을 전수 받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며 “(윤 부장판사가) 대형 로펌에 근무하시다가 법원 판사로 오셨으므로 저녁 회식에서 ‘왜 변호사에서 판사로 직업을 바꾸셨나요’라는 질문을 드렸는데 윤 원장님은 대형 로펌에서 느꼈던 도덕적 해이를 언급하며 법관이 가져야 할 가치관과 철학에 대해 여러 말씀을 해주셨다”고 회고했다.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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