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5일전 여성과 심한 말다툼… 당국, 면담때 위험징후 파악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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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주민들 “성범죄자인줄 몰라”… 2008년 이전 범죄, 신상공개 안돼
② 주거지 이탈경보 대응 소홀… 강씨와 통화뒤 현장 확인않고 돌아가
③ 5차례 집 갔지만 수색 못해… 체포영장, 도주 16시간 뒤에야 신청
④ 뒤늦은 동선 추적 성과 없어… 서울 38시간 활보, 2차 범행 못막아

전자발찌 훼손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 씨가 자신의 카카오톡에 게시한 본인 사진. 강모 씨 SNS 캡처
전자발찌 훼손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 씨가 자신의 카카오톡에 게시한 본인 사진. 강모 씨 SNS 캡처

강씨 출소에서 연쇄살인까지 3개월… 전자발찌 부착자 관리 ‘구멍’


여성 2명을 연쇄 살해한 강모 씨(56)는 올해 5월 출소한 뒤 한 목사의 주선으로 화장품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여성을 상대할 일이 많고, 이동이 잦아 보호관찰관이 26일 강 씨의 이동 경로를 현장 점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동부보호관찰소는 전자발찌 부착자인 강 씨의 참혹한 범행을 막지 못했다. 강 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뒤에도 법무부와 경찰은 강력 범죄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적극적인 추적을 벌이지 않았다. 강 씨의 출소부터 경찰 자수까지 3개월 여간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정부의 관리망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 범행 5일 전에도 소동…위험 징후 파악 못해

동아일보 취재 결과 강 씨는 범행 전에도 여러 소동을 피우며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냈다고 한다. 서울 송파구 관계자는 “(사건) 약 2주 전에 강 씨가 전처의 가족을 찾아가 다툼을 벌였다고 들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자존심이 센 듯 반응했다”고 전했다.

강 씨는 첫 피해자인 40대 여성을 살해하기 5일 전인 21일 오전 4시 20분경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 편의점에서 50대 여성과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이 편의점 직원은 “실랑이를 했던 여성이 한 시간 사이에 3번이나 편의점에 들어왔다”며 “겁에 질린 얼굴로 ‘밖에서 제가 소리 지르면 경찰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 직원은 두 사람이 얼마 뒤 어디론가 떠나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보호관찰소 관찰관은 24일 강 씨를 불러 면담했지만 강 씨가 여성과 다툰 사실 등 위험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 여성은 강 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뒤 추가로 살해한 두 번째 피해자인 것으로 보인다. 강 씨가 경찰에 자수할 때 타고 온 은색 SM5는 이 피해 여성의 차량이다. 강 씨는 성범죄 2건을 포함해 14건의 범죄 전력이 있었지만 인근 주민들은 강 씨가 성범죄자인 것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강 씨는 2008년 이전에 범행을 저질러 ‘성범죄자 알림e’ 웹사이트를 통한 신상 공개 대상자가 아니었다.

강 씨는 27일 새벽 야간 외출 제한 명령을 어기고 약 2km 거리까지 이동했다. 강 씨가 이 같은 특이 행적을 보였음에도 보호관찰소가 강 씨의 집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미흡한 대응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발찌 부착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관리 인력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 씨를 관리하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의 경우 관내 전자발찌 부착자가 110여 명이지만 고작 2명이 한 조로 야간 근무를 하며 관리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보호관찰은 범죄자를 교화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고, 보호관찰소 공무원들은 경찰과 달리 테이저건, 권총 등 장비가 없다”며 “강 씨의 집에 찾아갔더라도 범행을 막기는커녕 범행의 피해자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서울역’으로 위치 특정하고도 검거 실패

경찰은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강 씨를 뒤쫓으면서 강력 범죄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아 강 씨의 집 내부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추적에도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27일 오후 5시 31분 강 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다는 사실을 몇 분 뒤 통보받았다. 경찰은 이날 오후 6∼10시 3차례, 28∼29일 2차례 등 총 5차례 강 씨의 집을 찾아갔다. 당시 강 씨의 집에는 26일 오후 살해된 40대 여성의 시신이 방치돼 있었지만 체포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진입하지 못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적 제도적 한계가 있지만, 현장 경찰의 적극적인 경찰권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부분이 아쉽다”고 밝혔다. 법무부 특별사법경찰도 강 씨 도주 16시간 만에야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경찰과 법무부는 28일 오전 9시 10분 도주 중인 강 씨의 위치를 서울역 인근으로 좁히고 추적을 벌였다. 경찰과 법무부는 4, 5시간 강 씨의 동선을 놓치며 시간차가 벌어졌고 추가 살해 범행을 막지 못했다.

강씨 오늘 영장심사… 신상공개 검토


경찰이 29일 오후 강씨 자택에서 감식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뉴스1
경찰이 29일 오후 강씨 자택에서 감식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뉴스1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26일 오후 9시 반∼10시경 거여동 자신의 집에서 40대 여성을, 29일 오전 3시경 송파구의 한 주차장에서 50대 여성을 각각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는 살인과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1일 오전 10시 반 서울동부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다. 경찰은 강 씨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 공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신상공개심의위원회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전자발찌#관리#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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