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 고급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테슬라 전기차 충돌 화재 사건’을 경찰이 수사 약 4개월 만에 대리운전기사의 조작 미숙으로 인한 사고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사고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하지 못한 데다 테슬라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결과라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충돌 전 가속페달 최대치로 밟아”
서울 용산경찰서는 “차량을 운전한 대리기사 A 씨(60)의 조작 미숙을 사고 원인으로 판단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경찰은 최근 사고 원인을 밝힐 핵심 단서로 지목돼왔던 EDR이 크게 손상돼 분석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해외에서 테슬라의 기록 정보를 추출한 전용 장비까지 들여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EDR에는 차량의 속도나 가속페달 및 브레이크 작동 여부, 핸들 각도 같은 정보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지난해 12월 테슬라에서 제공한 ‘텔레매틱스(차량 무선인터넷 서비스) 운행정보’를 토대로 사고 정황을 분석했다. 테슬라는 자사 차량의 운행정보를 원격으로 수집해 빅데이터 등으로 활용한다.
이에 따르면 사고 차량은 충돌 직전까지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았다. 가속페달만 작동된 기록이 남아있었다. 국과수가 차량을 검사했을 때도 제동장치에는 기계적 결함이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차량이 벽에 충돌하기 10초 전부터 가속을 시작했고 4초 전부터는 가속페달이 최대치로 작동돼 시속 95km의 속도로 충돌했다”며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도 브레이크 등이 점등되지 않았으며, 추정 속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텔레매틱스 정보도 EDR 기록 못지않게 신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울러 CCTV와 사고재현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다각도로 분석을 거쳤다”고 말했다.
●“최대치 밟으면 시속 100km 넘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론에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일단 텔레매틱스 운행정보를 믿을 수 있느냐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텔레매틱스 정보는 EDR 기록보다 정밀하지 않다. 판단 근거가 된 자료의 원본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기사가 충돌 전 ‘10초 동안’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것도 논란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 모델X는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이 3초 남짓이다. 이미 운행하던 차량에서 가속페달을 4초나 최대치로 밟았다면 시속 100km를 넘겨야 맞다”고 했다. 김 교수도 “경험 많은 기사가 10초나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록이 텔레매틱스 정보가 그만큼 세밀하지 못하단 반증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차량이 급 발진하며 전류가 과도하게 흘러 브레이크 등이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대리기사 A 씨도 “차량이 급 발진해 사고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통사고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는 “이해관계에 얽힌 제조사에서 제공한 자료가 법정에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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