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비종교적 신념’ 양심적 예비군훈련 거부 첫 인정

뉴스1 입력 2021-02-25 10:29수정 2021-02-2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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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살인 거부’ 등의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역동원소집에 불참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적 신념이 아닌 비종교적 신념도 ‘양심적 병역거부’로서 허용된다고 본 대법원 첫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6년 3월14일부터 2018년 4월16일까지 16차례 예비군훈련소집 통지서를 전달받고도 훈련에 불참하고, 병력동원 훈련을 받으라는 통지서를 받고 훈련에 불참했다가 예비군법 및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해당 혐의로 수차례 조사를 받고 고발로 인해 재판을 받아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A씨는 재판에서 어머니와 친지의 간곡한 설득에 따라 입대하긴 했으나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가정환경과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 등을 보고 살인 거부하는 신념을 갖게 됐다며 예비군 훈련 및 병역동원소집에 불참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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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A씨가 신념을 형성하게 된 과정, 입대 및 군사훈련을 거부하게 된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경제적 손실과 형벌의 위험 등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해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A씨의 훈련 거부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원심을 유지하며 “A씨가 병역거부 중 가장 부담이 큰 현역 복무를 이미 마쳤는데도 예비군 훈련만을 거부하기 위해 수년간의 불이익을 모두 감수하고 있는 점, 유죄로 판단될 경우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도록 중한 징역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점 등을 보면 A씨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 소명된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A씨가 최근까지 ‘오버워치’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의 게임을 했으나 이러한 사정만으로 A씨의 양심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대법원도 A씨가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것이 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며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경우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제1호는 ‘예비군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 병역법 제90조 제1항 제1호는 ‘병력동원훈련소집 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일시에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점검에 참석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해당 법 규정들이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고,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도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이라는 점에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병역법 제88조는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즉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것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역동원훈련을 거부한 A씨의 경우 현역입영 시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피고인이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사안에서 진정한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것으로 보아 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위반죄로 기소된 B씨, C씨에 대해선 “진정한 양심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유죄 판결을 받은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이 병역거부의 사유로 내세우고 있는 양심은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말하는 진정한 양심, 즉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것이다.

B씨는 “전쟁을 위해서 총을 들 수 없다”는 비폭력·평화주의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고, C씨는 “평화의 확산을 위해 폭력을 확대·재생산하는 군대라는 조직에 입영할 수 없다”는 개인적·정치적 양심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

대법원은 B씨의 병역 거부가 ‘권위주의적 군대 문화’에 기초하고 있어 집총 등 군사훈련과 본질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고 했다. B씨가 병역거부 이전에 양심적 병역거부나 반전·평화 분야에서 활동한 구체적인 내역이 아무것도 소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유죄의 근거로 들었다.

C씨의 경우 원심은 “모든 전쟁이나 물리력 행사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고 목적, 동기, 상황에 따라 전쟁이나 물리력 행사에 가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C씨는 집회에 참가해 질서유지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경찰관을 가방으로 내리쳐 폭행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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