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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종가 어른들 “괜찮다, 오지마라… 감염 막아야 禮도 지킨다”

입력 2021-02-04 03:00업데이트 2021-02-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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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2021 新禮記]<上> 종가마다 ‘비대면 설’ 앞장
어르신들이 먼저 “괜찮다 오지마라”
6·25전쟁-구제역 때만 건너뛰었던 강릉 마을세배 ‘도배례’ 올해 생략

거리두는 설… 444년 지킨 전통도 잠시 멈춥니다


◀석담 이윤우 선생의 16대 종손 이병구 씨(가운데)가 1일 경북 칠곡 석담 선생 사당 앞에서 종친들과 함께 ‘괜찮다, 오지 마라’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444년 된 전통 행사도 잠시 쉬어간다.

강원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대동계가 1577년(선조 10년)부터 이어온 도배례(都拜禮) 이야기다. 도배례는 설 다음 날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른들께 세배를 하는 행사. 타지로 나간 자손들을 포함해 매년 150∼200명이 한데 모인다.

한 해를 여는 중요한 일이지만 위촌리 대동계는 올해 설에 도배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수백 년간 이어오던 행사를 거른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도배례가 중단된 기록은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 초반과 구제역이 퍼진 2011년뿐이다. 박노경 위촌리 대동계 사무국장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의 본래 의미를 새겨보면 올해는 쉬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올해 설은 지난 추석과 마찬가지로 ‘거리 두기’ 명절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올해 설에는 직계가족이라도 주소지가 다른 경우 5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1인당 1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지난 추석보다 한층 엄격한 방역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추이를 보면 불가피하다. 지난 추석 연휴 5일간 하루 평균 확진자는 62.4명이었다. 반면 최근 5일간 하루 평균 확진자는 352.2명이다. 환기가 어려운 계절적 특성까지 감안하면 이번 설은 지난 추석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러나 일부 가정에서는 “추석 때도 못 만났는데 이번 설에는 만나야 한다”는 어른들이 있다. 자녀 입장에서도 고향 방문을 두 번씩 미루기가 망설여진다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한 번 더 거리 두기를 지켜야만 오는 추석에 얼굴을 마주하고 정을 나눌 수 있다.

이런 점을 헤아려 먼저 나서는 어르신들도 있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보존회와 칠곡 석담 이윤우 선생 종가 등 전국 곳곳의 종가들이 “괜찮다. 오지 마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적어도 이번 설까지는 비대면으로 안부를 전하는 것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신예기(新禮記)’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부모의 생명과 자신의 건강을 위한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코로나19 시대의 효도”라고 강조했다.

종가 어른들 “괜찮다, 오지마라… 감염 막아야 禮도 지킨다”
이번 설에는 지난해 추석보다 강화된 거리 두기 조치가 적용된다. 지난 추석 때는 가족 모임에 대한 제한이 없었지만 오는 설에는 가족이라도 최대 4명만 모일 수 있다. 영유아도 인원으로 세기 때문에 두 가족만 모여도 방역 수칙에 어긋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켜야 할 예법은 예년과 완전히 다르다. 유교 문화에서 명절 가족 모임을 중시한 이유는 가족과 잘 지내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감염병을 막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신예기(新禮記) 실천’이 필요하다. 전통문화가 품은 정신은 따르되 방식은 시대 상황에 맞추는 것이다.

○ 종가마다 “모이지 말자” 앞장

조선시대 학자 석담 이윤우 선생의 16대 종손 이병구 씨(69)는 지난달 중순 종친들에게 연락해 “이번 설에도 고택(경북 칠곡군 지천면)으로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만 사당에 한두 명씩 세배하러 들르는 친척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 음복(飮福) 도시락을 준비했다. 방역과 예를 모두 지키기 위한 절충안이다.

▲강원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대동계에서 444년간 이어온 도배례(都拜禮). ‘거리 두기’ 명절을 위해 올해는 쉬어간다.
이런 ‘언택트 명절’은 지난해 추석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씨는 “지난 추석 때 영상 통화로 안부를 묻고,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친지에게 도시락만 들려 보내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모두가 모이는 명절을 되찾으려면 집안 어른부터 비대면 명절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추석 때 종친 중에서는 도시락만 받고 돌아가면서 서운해하는 이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상황을 보면서 ‘적절했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가 등이 속한 풍산 류씨 동성촌을 대표하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보존회 측은 2일 올해 설 예법을 정했다. 여럿이 모여 차례를 지내거나 음복하는 것을 금하고, 각자 집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사당에 절을 하러 갈 경우에도 각자 따로 가기로 했다. 류한욱 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이번 설에는 모이지 말고 모든 것을 간소하게 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 지자체들 “고향 방문 자제” 당부

지방자치단체들도 귀향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칠곡군은 지난달부터 ‘명절은 집에서 스마일’ 챌린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번 명절에는 집에 머물겠다는 다짐을 사진과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주변에 알리는 캠페인이다. 전남 신안군도 주민들과 향우회를 대상으로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전하고 있다.

가족을 못 보는 아쉬움을 달랠 방안을 고민하는 지자체도 있다. 지난 추석 ‘야(얘)들아∼오지 마라’는 영상 편지를 공개했던 경북 의성군 어르신들은 이번 설에 ‘영상 답신’을 받는다. 의성군 측은 “이번 설에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늘 곁에 있겠다는 내용의 자식들의 영상 편지, 관내 치안은 걱정 말고 건강하시라는 소방서·경찰서 공무원들의 영상 편지를 취합 중”이라며 “8일부터 어르신들께 보여드려서 명절 기분을 내시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 “모두의 안전 생각하는 명절 돼야”

▶이윤우 선생의 종가는 이번 설에 찾아오는 친척에게는 음복 도시락을 들려 보낼 계획이다.칠곡=홍진환 기자 jean@donga.com·강릉시 제공
일부 가정에서는 명절 거리 두기를 두고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무조건 오라는 시댁에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이 아무 말씀을 안 하시는데 먼저 ‘안 가겠다’고 해도 되나”라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모 씨(35)는 “정부가 설 방역대책을 발표한 뒤에도 양가 모두 ‘너무 오래 안 봤다’며 오라고 하셔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고향 대신 호텔이나 관광지를 찾는 경우도 여전하다. 정부가 설 연휴 기간 숙박시설 예약을 객실수 3분의 2 이내로 제한한 가운데 강원·제주 등지의 예약은 거의 끝났다. 가족 간 모임은 피하면서 인파가 몰리는 곳으로 가는 건 ‘거리 두기 명절’의 취지와 안 맞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설에는 자신과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을 생각해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도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는 “유교에서 중요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발휘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번 설에도 거리 두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칠곡=강은지 kej09@donga.com / 원주=이인모 기자/ 명민준·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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