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노동 아니다? 가사도우미가 실업급여 못 받는 이유 [박성민의 더블케어]

박성민 기자 입력 2020-12-21 16:00수정 2021-06-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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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년째 가사도우미로 일해 온 송모 씨(59·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일하는 집이 8곳에서 5곳으로 줄었다. 고객들이 감염을 우려해 외부인 출입을 꺼리거나, 지출을 줄이려고 서비스 이용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몇 달째 손에 쥔 돈은 월 1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신용불량자인 삼십대 아들까지 돌봐야 하는 송 씨는 생계가 막막하다. 송 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생활비도 모자라는 판에 병원에 다닐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2. 가사도우미 허모 씨(55)는 최근 고객의 요청으로 원목 식탁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허리를 굽히기 힘들만큼 통증이 심하지만 꾹 참고 일을 나간다. 신용카드로 돌려 막고 있는 빚을 갚으려면 하루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3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서비스이용을 중단하는 가정도 늘었다. 허씨는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집에서 1시간 반 걸리는 곳도 마다않고 다닌다.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많이 받은 업종 가운데 하나가 가사서비스 분야다. 대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일자리가 급감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가사서비스 종사자의 주 연령층이 50대 이상 여성(93%)으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데 익숙지 않아서다. 자영업자나 청년일자리 문제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가사서비스를 주요 직업군이나 산업 분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인식도 한 몫 했다.

● 코로나19로 수입 43% 감소
올 6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가사근로자 29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이들의 월 평균 수입은 112만 원에서 64만 원으로 약 43% 급감했다. 74%는 방문 가정이 줄었다고 답했다. 가사서비스 플랫폼인 행복한돌봄 사회적협동조합 안창숙 이사장은 “자녀들이 등교를 안 하고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가사서비스 이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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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고용 취약계층에 지급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도 가사근로자에겐 큰 도움이 안 됐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지난달 회원 113명에게 물었더니 12명(10.6%)만 지원금을 받았다고 답했다. 미지급자 중 31.3%는 소득 감소 기준에 미달이었고, 22.9%는 소득 감소를 증명하지 못했다. 가사근로자들은 급여를 현금으로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6.7%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몰라 신청조자 하지 못했다.

자료: 고용노동부

가사근로자는 정부 대책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4일 재가 돌봄서비스 노동자와 방과 후 강사 등 9만여 명에게 50만 원을 지원하는 ‘필수노동자 보호·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서도 가사근로자는 제외됐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가사근로자는 비공식 통계로 약 40만 명에 이른다”며 “중장년 여성 비중이 높은 가사근로자의 고용 안전망이 흔들리면 여성의 노후 빈곤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집안일은 ‘노동’ 아니다”…67년 전 인식 그대로
엄밀히 따지면 한국에서 가사서비스 종사자는 법적 근로자가 아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 11조(적용범위)에 ‘가사 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후 이 조항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집에서 하는 일은 ‘노동’으로 보지 않는 사고가 6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가사근로자들은 4대 보험에 가입이 안 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다쳐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가사근로자의 약 53%는 국민연금 미가입자다.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 한 장 없이 일하다보니 처우도 열악하다. 휴게 시간도 불명확해 근무 시간 내내 일을 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연차 휴가 등 기본적인 근로자의 권리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료: 고용노동부

국내에서 가사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대 국회부터 관련법은 꾸준히 발의돼 왔다. 가사근로자를 사회보험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을 적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는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고, 정부도 이에 발맞춰 2017년 직접 법안을 발의하는 등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관련법은 아직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근로시간이나 최저임금 등 굵직한 이슈에 밀려 해당 상임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에서 늘 후순위로 밀린 탓이다. 가사근로자 지원법은 경영계에서도 통과를 바라는, 노사간 이견이 없는 분야다. 가사서비스 관련 벤처 등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가사서비스 시장 규모는 연간 약 8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 해외에선 가사근로자 ‘노동권’ 인정이 대세
해외에서는 가사서비스를 산업과 복지 측면에서 중요한 분야로 여긴다. 일본과 홍콩은 노동관계법에 가사근로자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은 2010년 가사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오바마 정부는 저소득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민간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유럽은 대개 정부 주도로 가사서비스 시장을 관리한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가사서비스 바우처를 발급하고 이용금액의 30~50%를 세액공제 해준다. 기업이 바우처를 구입해 직원 복지를 위해 제공할 수도 있다.

동아일보 과거 기사

1973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가정부도 직업인’ 기사. 본문에는 “서울시 120만여 가구 중 입주가정부를 두고 있는 집이 24만6000가구가 넘는다”고 돼 있다. 가사근로자의 수요 증가 및 이들의 전문성, 처우 등 당시에도 사회적 이슈였다. 동아일보 DB

가사근로자는 과거 ‘식모’, ‘파출부’ 등으로 불렸다. 1966년 YWCA가 직업교육을 하면서 하나의 직업군으로 육성됐다. 강제력은 없었지만 당시 YWCA 자료에는 △하루 8시간 노동 △연 1주일 휴가 △연 200% 상여금 및 퇴직금 등 시대를 앞서간 근로 조건들이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들의 처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앞으로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면 가사서비스 시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은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산업경영학부 교수는 “인구 고령화로 가정 돌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가사서비스는 아이 돌봄, 노인 돌봄 등과 결합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하루빨리 제도가 정비돼 가사근로자들이 직업인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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