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도 고병원성 조류독감 발생… “오리농장 방역 철저히 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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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야생조류 AI 재발 비상

19일 오후 경기 김포시의 한 논에서 채취한 기러기 분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철새 등의 분변을 검사해 해당 조류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렸는지 확인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일 오후 경기 김포시의 한 논에서 채취한 기러기 분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철새 등의 분변을 검사해 해당 조류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렸는지 확인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담배꽁초처럼 생긴 거 보이세요?”

19일 오후 경기 김포시 한강 인근의 한 논. 방역복과 방진마스크 차림으로 논바닥을 열심히 뒤지던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질병대응팀 박정은 전문위원이 나무젓가락으로 작은 물체를 들어올렸다. 휘어진 담배꽁초 모양의 물체는 기러기 분변. 수확이 끝난 논의 낟알을 먹으러 온 새들이 남긴 것이다. 이 분변은 겨울 철새들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됐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다.

박 전문위원은 이날 “올해는 해외에서 고병원성 AI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겨울 철새들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 거치는 러시아, 대만, 베트남에서 올 9월 이후에만 69건의 AI가 발생했다.

박 전문위원의 예측은 금세 현실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충남 천안시 봉강천 주변에서 21일 채취한 야생조류의 분변을 정밀 검사한 결과 H5N8형 고병원성 AI가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연초부터 유럽·러시아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AI와 같은 유형이다. 국내에서 야생조류는 2018년 2월 1일(가금류는 2018년 3월 17일) 이후 고병원성 AI가 발견된 적이 없었다가 2년 8개월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AI는 야생조류는 물론 가금류에도 생기는 급성 호흡기성 질병이다.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가금류 중 닭이나 칠면조는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 호흡곤란 등을 보이며 죽는다. 반면 야생조류는 AI에 감염돼도 증상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이동 중 가금류에 병을 옮기기도 한다.


환경부 소속기관들은 올 9월부터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을 중심으로 겨울 철새들이 자주 다니는 지역 87곳에 대해 상시 예찰을 진행하고 있다. 원래는 10월부터 예찰을 시작하지만, 올해는 고병원성 AI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예찰 시기를 9월로 앞당겼다. 예찰팀의 주된 업무는 야생조류의 분변을 주워 AI 바이러스 검출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내년 4월까지 지난해에 비해 양을 10% 늘린 4만4000점의 분변을 채집해 검사할 예정이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10월 현재 우리나라에는 57만5227마리(176종)의 철새가 들어와 있다.

분변 검사는 상대적으로 쉽게 AI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방식이다. AI는 호흡기성 질환이지만 조류의 분변에서도 많은 바이러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새들을 포획해 구강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방법도 있지만, 모든 개체를 포획해서 조사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새들이 민감하기 때문에 그물을 쏴서 잡으려 해도 도망가는 경우도 많다. 분변 검사는 새들이 도망가도 그 위치를 중심으로 분변을 채취할 수 있다.

새들의 흔적을 쫓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철새들이 많이 날아오는 곳이라고 해서 갔는데 허탕을 치는 경우도 있다. 주변에 공사 현장이 생기는 등 자연환경이 바뀌어 새들이 오지 않는 것이다. 예찰 지역이 워낙 넓어서 2군데를 돌면 하루가 다 간다. 박 전문위원은 “갑자기 눈, 비가 오면 철수해야 할 때도 있어서 항상 예측불허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현장에 나간다”고 설명했다.

고병원성 AI 발생 이후 농림부는 긴장하고 있다. 야생조류에서 발생한 병이 가금류에게 퍼지지 않도록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특히 오리가 걱정”이라며 “오리는 가금류라도 닭과 달리 증상을 느끼지 못해 AI를 퍼뜨리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고병원성 AI 검출 이후 분변이 나온 반경 500m 이내 지역에 사람과 차량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또 야생조류 방역대(AI 검출지점 반경 10km)에 포함된 세종시, 충남 천안시와 아산시의 철새도래지에서는 축산차량의 진·출입을 금지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방역차량으로 농가를 집중 소독하는 등 비상조치에 들어갔다.

AI 확산을 막으려면 가금농가부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농장에 출입하는 사람이나 차량에 대해 출입기록부를 쓰고, 농장에서 쓰는 차량이나 장비는 사용하기 전 반드시 소독을 해야 한다. 야생동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폭 50cm 이상의 생석회 벨트를 도포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가금농가는 시설이 미흡하다. 농림부가 올 4월부터 7월까지 전체 가금농가의 55%인 2359곳을 조사한 결과 방역 미흡 사례가 171건이었다. 울타리·그물망 등 방역관리 시설 미흡이 78건(46%), 차량 및 사람 출입통제 미흡 26건(15%), 소독제 관리 미흡 24건(14%) 등의 순이었다. 농림부 관계자는 “언제든지 가금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모든 가금농장에서 어느 때보다 철저히 방역 수칙을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 조류인플루엔자(AI) ::
닭, 오리 같은 가금류와 야생 조류 등이 걸리는 급성 바이러스 전염병. 고병원성(주로 H5, H7형)과 저병원성으로 구분된다. 가금류가 고병원성 AI에 걸리면 급성 호흡기 증상을 보이며 폐사율이 100%에 달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조류독감#야생조류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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