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일요일밤 11시 24분…산업부 직원, 월성 1호기 자료 지웠다

박효목기자 입력 2020-10-20 21:28수정 2020-10-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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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1호기 조기폐쇄 등 에너지전환과 관련된 중요한 파일은 나중에 복구돼도 파일명과 파일 내용을 알 수 없도록 모두 수정한 뒤 삭제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직원 A 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경제성 저평가를 위한 수치 조작, 탈원전 정책에 따른 외압 의혹을 풀 수 있는 문서들이 감사원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증거 인멸에 나섰다는 것. 감사원은 산업부가 감사 과정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문건 444건을 삭제했고 이 중 120개 문서는 디지털 포렌식 과정을 통해서도 끝내 복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20일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 B 국장은 감사 상황을 보고받은 뒤 대책회의를 열고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A 씨가 “평일에는 사람이 많아 부담된다”고 하자 C 과장은 “자료를 삭제하는 것은 주말에 하라”고 지시했다.

A 씨는 결국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1일 오후 11시 24분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 안에 있는 월성 1호기 자료를 삭제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없는 일요일이었다. A 씨는 민감한 문서를 우선 골라낸 뒤 복구돼도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과 내용을 수정해 다시 저장한 뒤 삭제하는 방식으로 문서들을 지워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자 ‘단순 삭제 단축키(shift+delete)’를 이용해 문서를 지웠고 나중에는 122개 폴더를 모두 삭제해 나갔다. 삭제된 문건 중에는 ‘에너지 전환 후속조치 추진계획’ 등 이른바 ‘BH(청와대) 보고’ 문건들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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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산업부에서 ‘자원 개발’ 관련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어서 자료를 지울 때는 제대로 지워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며 “그래서 복구해도 원래 문서 내용을 알 수 없게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 과정을 통해 청와대 보고 문건 등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혹을 풀 수 있는 문서들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를 방해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감사원은 산업부에 문건 삭제를 지시한 B 국장과 A 씨에 대해 경징계 이상의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박효목기자 tree6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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