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같은 숙소 머물렀다고… 어느날 불륜커플이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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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수련회 갔다가 감염된 남녀, 동선 공개후 누리꾼 억측에 고통
해명해도 “뭔 헛소리냐” 막무가내

부산 보건당국의 공지로 19번과 30번은 ‘공식 커플’이 됐다. 8년간 교회 누나와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던 김동현 씨(27)와 김지선 씨(30·여) 얘기다.

이들은 2월 14일부터 사흘간 부산 온천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 23일 두 사람이 동시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각각의 동선이 공개됐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확진 판정 이틀 전 같은 시간, 같은 숙박시설에 머무른 사실이 알려졌다.

밝혀진 계기부터 황당했다. 더구나 온라인 댓글은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슨 영문인지 두 사람은 졸지에 신천지 신도이자 불륜 커플이 돼 있었다.

당시는 한창 대구 신천지예수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퍼지던 시기. 이 때문에 부산에서 첫 집단감염이 발생한 온천교회도 ‘신천지 관련 교회 아니냐’는 의심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두 사람을 신천지 신도로 몰아붙였다.


설상가상 두 사람이 불륜 커플로 몰린 것은 지선 씨의 약혼자 때문이었다. 약혼자 역시 온천교회 신도로, 이들과 함께 수련회에 다녀왔다. 약혼자는 두 사람보다 하루 빠른 22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부산시는 24일 지선 씨의 역학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온천교회의 부산 19번 확진자는 13번 확진자와 약혼한 사이”라고 밝혔다.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였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약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호텔에 드나들었다는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완벽한 오해였다. 먼저 21일 ‘팔레드시즈’에서는 온천교회 청년부 리더 10여 명이 참석한 모임이 열렸다. 당시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몰랐던 두 사람은 이 모임에 나갔다. 참석자 중 두 사람만 코로나19에 걸려 이틀 뒤 동선이 공개된 것이다.

그리고 팔레드시즈는 평소 온천교회 교인들이 회의나 소규모 MT를 할 때 자주 이용하던 콘도였다. 이를 호텔이라고 단정하고 ‘다른 목적’으로 갔을 거라 오해한 누리꾼들이 문제였다. 이런 와중에 보건당국의 오류도 있었다. 부산시가 보도자료에 지선 씨 약혼자의 확진 번호를 잘못 기재한 것. 약혼자는 13번 확진자가 아닌 16번 확진자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류 투성이였다. 누명을 벗어야 했다. 병상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두 사람 대신 가족과 지인들이 나섰다. 동현 씨의 누나는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다. 지선 씨의 친구는 루머가 도는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해명과 함께 ‘망상은 머릿속으로만 하면 죄가 안 되지만 글로 썼을 경우는 다릅니다’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거 알고 쓰셨어야 합니다’라는 경고 메시지도 남겼다.

그러나 자극적인 루머에 비해 해명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나마 해명을 본 이들은 또 악플을 달았다. “뭔 헛소리야 이거?”, “신천지 집안끼리 결혼하네” 등 막무가내였다.

동현 씨는 입원 2주 만에 퇴원했지만 한 달 동안 기침이 끊이지 않는 후유증을 겪었다. 코로나19와 싸우기도 힘든데 낯 뜨거운 루머까지 겹치니 마음이 힘들어 회복이 늦었다. 불륜의 꼬리표는 기침보다 길었다. 부산시까지 나서서 공식 SNS에 근거 없는 루머라고 밝혔지만, 부산 바닥 곳곳에 두 사람에 대한 오해가 퍼진 상태였다.

두 사람의 동선은 공식적으로는 삭제됐다. 보건당국은 확진자가 마지막 접촉자와 접촉한 날로부터 14일이 지나면 동선 정보를 삭제한다. 그러나 동선과 신상을 담은 기사, 한번 퍼진 루머, 인터넷에 남은 허위 정보, 더러운 악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아주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지선 씨의 ‘약혼자’도 6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남편’이 됐다. 동현 씨는 이제 ‘불륜남’이 아닌 ‘혈장 기증자’로 불리고 싶다. 온천교회 확진자 32명 중 혈장 기증이 가능한 21명은 6월 8일 혈장을 부산시에 단체로 기증했다. 혈장 기증자가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교회 청년부에서 의견을 모았다. 온천교회가 부산에서 집단감염이 시작된 곳인 만큼 마음의 빚도 갚고 싶었다고 한다. 이들의 혈장은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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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코로나19#역학조사#동선공개#불륜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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