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활동도 원격으로… “학교 안가도 문제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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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전과목 실시간 원격수업’ 영훈국제중

서울 강북구에 있는 영훈국제중 전경.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 강북구에 있는 영훈국제중 전경.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020년은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에 못 가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공부와 시험, 친구 관계 등 모든 것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로 가득 차게 됐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국제중과 자율형사립고 등 일부 ‘특수학교’ 학생들은 더더욱 올해를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코로나19의 충격만 겪은 게 아니라 학교 자체가 아예 명패를 뜯길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교육당국이 지난해 추진한 지정취소에 대해 법원에 낸 집행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일단 지위를 유지한 채 행정소송을 하고 있다.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이 서울시교육청의 특성화중 지정 취소에 불복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21일 인용됐다. 두 학교는 국제중 지위를 지키기 위해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학교는 코로나19와 소송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학교 본연의 기능인 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가운데 최근 1학기 내내 전 과목 실시간 원격수업으로 교육계에서 화제가 된 영훈국제중을 방학 전인 지난달 찾았다.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한 학년씩 등교하는 가운데 2학년 학생들이 수업 중인 교실은 그 어느 학교보다 활기차면서도 안정돼 보였다. 교사도, 학생도 마치 ‘내일 학교가 사라지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가르치고 배우겠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더 이상 귀족학교 아냐’ vs ‘폐지가 정답’
‘영훈학원’이라는 이름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도 갖고 있다. 같은 재단의 영훈초는 유명 사립초이고, 중학교는 국제중으로 운영돼 과거 재벌가 자녀 등이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회계비리, 입학비리 등 각종 사건으로 세간에 오르내린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영훈국제중이 국제중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하고 “교육감의 정치논리에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절규할 때도 학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영훈국제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선 학교들이 혼란스러워하던 1학기에 전 과목을 실시간 원격수업으로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영훈국제중의 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는 모습. 영훈국제중 제공
영훈국제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선 학교들이 혼란스러워하던 1학기에 전 과목을 실시간 원격수업으로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영훈국제중의 한 교사가 원격수업을 하는 모습. 영훈국제중 제공
영훈국제중은 2013년 입학비리 등의 문제가 드러나자 전면적인 쇄신을 했지만 이를 아는 이들 역시 많지 않다. 영훈국제중은 2015년 이후 입학생 선발을 전원 추첨제로 바꿨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졸업생은 누구나 원서를 낼 수 있고 전체 인원 중 20%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가운데 뽑는다. 1개 학년 정원 164명 가운데 이른바 ‘강남 학생’은 16명꼴이다. 그럼에도 영훈국제중은 여전히 주로 ‘귀족학교’의 프레임 안에서 거론된다.

그래서일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수년 전부터 “국제중은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교육계에서는 “조 교육감의 두 자녀가 외고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중과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건 조 교육감에게 거의 이념이자 신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국제중 재지정 평가에서 영훈국제중은 대원국제중과 함께 탈락했다.

학교 측은 서울시교육청의 평가기준에 크게 반발했다. 영훈국제중은 “법에 의해 설립된 국제중을 교육청의 평가기준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 지난 5년간 고군분투했는데 갑자기 작년 12월 교육청이 5년 전과 전혀 다른 기준을 들이댔다”며 “사실관계는 보지 않고 교육감의 정치 논리만으로 국제중을 죽였다는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학교는 “평가를 위해 학교가 준비한 보고서와 회의록, 참고자료가 총 25권에 달했는데, 교육청 평가단은 단 4시간 동안 학교를 보고 지난 5년에 대해 ‘탈락’이라고 평가했다”며 “너무나 허탈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토로했다.

○ 압도적 교육의 질… 구성원 평가 ‘만점’
영훈국제중에 대한 교육당국의 평가와 별개로 이 학교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2015년 평가에서 영훈국제중은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구성원의 만족도에서 만점을 받았다. 이번 평가에서는 해당 항목의 평가 배점이 15점에서 9점으로 줄어 만족도는 그다지 중요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어느 중학교가 과연 학생과 학부모, 교사로부터 만족도 ‘만점’을 받을 수 있겠느냐를 생각해보면 이 학교의 시스템과 교육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처음으로 영훈국제중을 찾았을 때 크게 두 가지에 놀랐다. 먼저 놀란 건 시설이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안 좋아서 놀랐다. 건물은 협소했고 벽과 바닥 등 모든 것이 오래돼 보였다. 요즘은 어지간한 농어촌학교에 가도 이보다는 낫다 할 수준이어서 시설만 봤을 땐 왜 입학 경쟁률이 8 대 1에 이르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궁금증은 교사들을 만나고 수업을 참관하면서 풀렸다. 동시에 두 번째로 놀랐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 비록 시설은 낡았지만 교사들은 놀라울 만큼 열정적이었고 수업 방식도 일반 중학교와 전혀 달랐다.

영훈국제중의 수업 방식은 이랬다. 글로벌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학교답게 모든 학급에 한국인과 원어민 교사가 복수담임을 맡는다. 두 교사는 한 팀처럼 움직이며 국가에서 정한 정규교육과정 내용을 다루는데, 그 운영 방식이 독특했다. 통상 외국어고의 경우 일반과목은 한국어로 가르치고, 외국어 과목만 외국어로 진행한다. 반면 여기선 영어뿐만 아니라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과목 수업이 모두 두 가지 언어로 진행되고 있었다.

예컨대 1차시에 한국인 교과 교사가 한국어로 교과의 핵심 내용을 수업하면, 2차시에 원어민 교과 교사가 들어와 1차시 때 배운 내용의 응용 사례나 실험을 영어로 수업한다. 한 반은 둘로 나뉘어 이런 식으로 교차 운영되는데,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넘나들며 자연스레 개념과 표현을 익혔다.

원어민 교과 교사들은 해당 과목의 학·석사 전공자들로, 이 중 절반이 본국에서도 교원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었다. 한 학생은 “한국인 선생님들도 짱”이라며 “과학 선생님은 ‘나사(NASA·미항공우주국)’ 출신이란 소문도 있다”고 귀띔했다. 교사에게 확인 결과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학생들이 교사들의 실력을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영훈국제중 학생들의 입학 시점 영어 실력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인 학생부터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학교의 목표는 입학 때 영어실력이 어떠했든 간에 3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할 시점에는 모두가 큰 차이 없이 잘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생들의 영어수준을 10단계로 나눠 방과후 보충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천편일률적 수업을 진행할 경우,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당혹스러울 것이고 입을 뗄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스테이시 매클렐런드 교사는 “학생들이 3년간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원어민 교사들 모두 감격스러워할 정도”라며 “첫 수업 때 아무 말도 못하고 당황해 울던 학생도 3학년이 돼 언제 어디서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걸 보면 교육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맞춤형 학습’은 이번 시교육청 평가에서 ‘왜 학생들을 줄 세우느냐’는 지적을 받고 감점 처리됐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수업에서 교사는 항상 교실 뒤에 앉아 있단 점이었다. 심지어 과학 과목조차도 교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교사는 핵심 개념을 설명한 뒤 해당 단원에 대한 과제를 내주는 중재자일 뿐, 실제 수업은 학생들이 전 시간에 각자 맡은 주제를 스터디해 온 자료로 이뤄졌다. 학생들의 발표와 이에 대한 토론으로 수업이 다 채워졌다.

학부모 김모 씨는 “솔직히 아이가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수업에 쓸 프레젠테이션 만든다고 실험하고 동영상 찍고 있는 걸 보면 ‘아무리 그래도 입시를 생각하면 저래도 되나’ 싶어 속이 탄다”면서도 “그래도 애가 학교 다니는 게 즐겁고 공부가 재밌다고 하니 만족하고 보낸다. 한국 중학생 중에 밤새 숙제하면서도 ‘학교가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되겠냐”고 말했다.

○ 코로나19에도 전 과목 실시간 원격수업
올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영훈국제중 교사들은 “모든 수업은 개학 첫날부터 실시간으로 원격수업한다”는 방침하에 설비를 갖추고 내부 연수를 진행했다. 이 학교 국제특성화 부장을 맡고 있는 이주연 교사는 “원래부터 교사가 일방적으로 수업하는 형태였다면 녹화수업을 했겠지만 우리는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수업이 채워지기 때문에 실시간이 아니면 안 됐다”며 “모든 학생을 구글 클래스룸에 초대하고 줌으로 화상을 연결하니 아이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는 차이만 있지 오프라인 수업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구글 클래스룸을 활용하면 화면 공유는 물론 마치 교사가 책상 사이를 거닐며 학생들의 노트를 보듯, 실시간으로 자료를 나눠주고 학생들의 작성 내용을 보는 게 가능하다. 과제 할당과 취합, 출석기록 등도 자동으로 데이터화돼 한눈에 볼 수 있다. 덕분에 영훈국제중은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60% 이상의 평가를 과정중심평가로 운영할 수 있었다.

성기윤 교감은 “악기 수업과 같은 방과후 활동도 강사들이 실시간 원격수업으로 코로나19 이전과 같이 진행하고 있다”며 “반 전체가 참여하는 퀴즈는 ‘카훗’ 같은 앱을 쓰고, 과학실험은 가상현실(VR) 프로그램도 접목 중”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이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 과목 실시간 원격수업을 한 이 학교의 사례를 ‘롤모델’로 공유해야 한다는 다른 학교들의 요청과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국제중 지정 취소의 위기 속에 이런 노하우는 제대로 나눠지지 못했다.

김찬모 교장은 “2009년 개교 이래 지금과 같은 우리만의 수업모델과 교육수준을 만들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며 “정치적 논리에 지정취소가 됐다면 학생들을 지키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수업 모델을 사장시킬 수밖에 없었으리란 점이 가장 가슴 아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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