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노후 자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흔히 자산관리라고 하면 수익률을 높이고 돈을 불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자산관리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관리하는 것이다. 노후 자금 관리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달성하려면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마다 은퇴 생활 기간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다르지만, 재무적 측면에서는 4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4L’이라고 한다.
● 죽기 전에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첫 번째 목표는 ‘장수(Longevity)’와 관련된다. 무전장수(無錢長壽)하지 않는 것이다. 노후 자금을 전부 금고에 넣어두고 매달 생활비를 빼서 쓴다고 해보자. 금고가 먼저 빌까, 아니면 내가 먼저 죽을까. 대다수 은퇴자는 ‘죽기 전에 금고가 먼저 비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돈이 있는데도 잘 쓰지 못하는, ‘자린고비’ 방식 자산관리를 한다.
캐나다 토론토 요크대의 모셰 밀레브스키 교수는 노후 자금이 고갈될 가능성에 대한 은퇴자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장수위험 회피 성향’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둘 중 어떤 쪽에 가까운지로 장수위험 회피 성향을 알아볼 수 있다.
① 은퇴 생활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은퇴 초반 건강하고 활동적인 시기에 더 많이 지출하고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② 나이 들어서 생활 수준을 크게 낮추거나 자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불안하다. 지금 좀 더 절제된 생활을 하겠다. ①번에 공감하는 이들은 장수위험 회피 성향이 낮고, ②번에 마음이 가는 이들은 장수위험 회피 성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장수위험에 대비하려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득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중간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수명’이 늘어난 만큼 ‘자산의 수명’도 늘려야 한다. 종신 소득원으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주택연금, 종신형 연금보험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은퇴 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은퇴 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라이프스타일(Lifestyle)’도 생각해 봐야 한다.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저마다 다른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 어떤 이는 혼자 여행할 때 즐겁고, 다른 이는 친구와 취미나 여가 활동을 할 때 기쁘다. 자기 계발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아껴서 자녀와 부모를 위해 쓰겠다는 이도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비용은 재량적이다.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지출과 달리 재량 지출은 여유가 되면 많이 쓸 수도 있고 여의찮으면 줄일 수 있다. 특히 은퇴 초반에 재량 지출이 많고,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라이프스타일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관리할 때 은퇴자들은 무작정 안전만 추구하지 말고, 어느 정도 위험을 감내하며 상승 여력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게 좋다. 월 배당 상장지수펀드(ETF)에서 매달 받는 분배금을 재량 지출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 자녀에게 얼마를 물려줄 것인가
세 번째로 배우자와 자녀에게 ‘유산(Legacy)’을 얼마나 남길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과거에는 어떻게든 가족에게 더 많은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은퇴자가 많았다. 하지만 수명연장으로 노후생활 기간이 늘어나면서 달라지고 있다.
‘다 쓰고 죽어라’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재무설계사 스테판 폴란과 마크 레빈이 공동으로 저술한 책 제목이다. 저자들은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의 여생에 투자하라고 한다. 유산을 남기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노후에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종신보험의 활용 방법도 바뀌고 있다. 베이비부머가 한창 경제활동을 하던 2000년대 초반 종신보험 가입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그들이 재직 중에 사망했을 때 유가족의 생계 보장을 위해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은 사망이 아닌 퇴직으로 소득을 잃었고, 자녀들 생계가 아니라 자신의 노후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종신보험을 연금으로 전환해서 노후 생활비로 쓰려는 은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진 재산을 전부 노후 생활비로 사용하고, 자녀에게는 종신 보험금만 물려주는 방법도 있다. 월 배당 ETF에 투자해 분배금은 생활비로 쓰고 원금을 상속하는 방법도 있다. 상속형 연금에 가입해서 연금은 생활비로 쓰고, 만기환급금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 비상예비자금은 충분한가
마지막으로 ‘유동성(Liquidity)’을 점검해야 한다. 특정한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비상예비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이 돈은 본인이나 가족이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으로 인해 목돈이 필요할 때, 주택의 대규모 수선이나 리모델링이 필요한 때와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6개월에서 1년 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비상예비자금은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보통예금과 같은 수시 인출 가능한 금융상품에 넣어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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