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으는 어승생 제1저수지(왼쪽)와 제2저수지는 해발 200∼600m 중산간지역 주민과 목장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면서 급수문제를 해결했다. 어승생저수지 개발은 제주지역 ‘물의 혁명’으로 불리고 있으며, 현재 제1저수지는 물을 비우고 보수 및 준설공사를 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7일 한라산 해발 1100m 지점 어리목계곡.
작은 화산체인 민대가리오름에서 내려온 물이 초록빛 이끼를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3∼5m 높이의 폭포 벽에는 군데군데 물봉선이 옅은 분홍빛의 꽃을 피웠다. 겨울철 결빙기나 극심한 가뭄을 제외하고는 연중 물이 마르지 않는다. 폭포에서 50m가량 흘러내린 물은 서어리목계곡을 따라 흐르다가 동어리목계곡에서 내려온 물과 합쳐진다. 2개 계곡이 합쳐지는 형태여서 일명 ‘Y계곡’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물의 혁명’으로 평가받는 어승생저수지의 원천이다.
● 한라산은 제주 생명수의 원천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의 ‘생명수’를 만들고 저장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제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성산 1918mm, 서귀포 1875mm, 제주 1467mm, 고산 1183mm 등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다우지역이다. 한라산에는 이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린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한라산 연평균 강수량은 성판악 4574mm, 어리목 3424mm, 진달래밭 5613mm 등으로 나타났다.
빗물은 한라산 계곡으로 모여 지하로 사라졌다가 일부는 중간에 솟아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땅속 깊숙이 내려간다. 물이 잘 빠지는 V자형 용암계곡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제주지역 물 연구 전문가인 고기원 박사는 “한라산에 내린 비는 물이 통하지 않는 불투수 암반에서 겉면을 흐르다가 투수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면서 지하수를 형성한다”며 “먹는 샘물인 ‘제주삼다수’는 18년 동안 지하를 타고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하를 흐르다가 투수층과 불투수층 암반 틈새로 새어나오는 것이 샘물이다. 한라산탐방로에 있는 사제비샘, 노루샘, 용진각샘 등은 빗물이 깊은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고 고지대에서 빠져나온 샘물이다. 해안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용천수’로 불린다. 하지만 조그만 가뭄에도 쉽사리 말라버린다. 지하관정 공사를 해서 물을 뽑아내기 이전에는 용천수, 봉천수(인공적인 연못 물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고인 물)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 제주 가뭄 해결한 어승생저수지 개발
지하수 개발 이전까지 물 문제는 제주지역 주민의 최대 현안이었다. 이 때문에 한라산 고지대 물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전개됐다.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지역에 논을 조성하기 위해 1930년대 어승생 주변 계곡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만들었다. 서귀포시 하원동에서는 1950년대 후반 영실계곡 물을 논 경작에 쓰기 위해 수로를 조성했다. 하원 수로는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으며 일부는 트레킹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1964년 제주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정부가 나서 어리목계곡과 아흔아홉골 물을 저지대로 끌어들이는 ‘어승생저수지 개발사업’에 착수했다. 저수지 개발 예정지가 어승생악(오름)과 닿아 있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사업은 예산 문제로 흐지부지되다가 1966년 당시 관광 개발에 관심이 깊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어리목계곡 물을 저수지에 모으는 형태를 직접 그린 ‘제주도 수자원개발 기본 구상도’를 도지사에게 전달하면서 현실화됐다.
이 메모지 때문에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이 어승생 저수지 개발 구상을 처음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나온 아이디어였다. 일제는 1937년 수립한 ‘제주개발계획’ 핵심 사항인 공업 및 생활용수 확보를 위해 어승생 표류수 취수 및 공급 방안을 제시했는데 실제 공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1958년에는 당시 제주지역 김두진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어승생 수원 개발을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제주도 ‘제주상수도개발 60년사’(2018년 발간) 제작에 참여했던 진기옥 제주도 유원지관리팀장은 “1967년 용수개발 실시설계를 통해 10만6800t 용량 어승생저수지 개발계획을 세우고 그해 4월 기공식을 열었다”며 “공사의 속도를 내기 위해 전국에서 검거한 폭력배를 ‘국토건설단’이란 이름으로 모두 503명을 현장에 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123일의 체류기간 동안 실제 작업 일수는 60일에 불과했고 탈주, 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 등 부작용이 컸다”고 전했다.
5개년 사업으로 추진된 해발 500m 일대 어승생저수지 개발은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공사기간을 2년 단축했으나 2차례 저수지 바닥 함몰사고가 나 1971년 12월에야 준공할 수 있었다. 준공 이후에도 수도관 연결 누수로 물이 새기도 하고 폭우로 수도관이 유실되기도 했다.
여러 문제가 발생했지만 어승생저수지는 동쪽인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 서쪽인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까지 해발 200∼600m의 중(中)산간 일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물의 혁명’을 가져왔다. 장구벌레가 가득한 물로 인해 벌어졌던 전염병과 풍토병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 제2저수지로 산간마을 급수 해결
제주도는 어승생저수지가 운용된 이후에도 용출량 변동, 수로 훼손 등 문제가 반복되자 직선거리로 800m가량 떨어진 해발 680m 일대에 50만 t 용량의 어승생 제2저수지 개발사업에 착수해 2013년 3월 완공했다. 태풍, 집중호우 등으로 육상에 노출된 수로가 파손되거나 이물질이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어리목계곡에서 저수지로 이어진 관로를 지하에 매설해 안정적인 물 유입이 이뤄지도록 했다. 제2저수지 가동에 따라 하루 1만8000t의 용수를 29개 마을 1만7800여 명에게 공급하고 있다. 저수지가 있었지만 극심한 가뭄 때마다 발생하는 격일제 급수를 해소하기 위해 하루 1만8150t 용수 생산이 가능한 30개 지하수공을 개발해 중산간지역 물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최근에는 제2저수지에 280kW급 소수력발전기 1기를 설치한 100m² 규모 발전소를 완공해 이달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간다. 어승생 수력발전은 1937년 일제강점기 제주개발계획에 포함돼 1960년대 정부에서 검토했다가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사업이다.
제주도는 2012년 287kW급 소수력발전기 1기를 설치했으나 관로가 수압을 견디지 못해 시설비 13억3600만 원을 날렸다. 낙차에 따른 수압을 낮추기 위해 관로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수정했고 이번에도 13억3600만 원을 다시 투자했다. 제주도는 연간 수익을 당초 1차 시설 당시 3억 원에서 1억3000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