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한 돈 여기 썼구나” 알 수 있어야…‘제2의 정의연’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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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6월 14일 0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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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눈가에 빗물이 맺혀있다. 2020.5.10 © News1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눈가에 빗물이 맺혀있다. 2020.5.10 © News1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의 핵심 중 하나는 회계부실 관리와 이에 따른 회계부정 의혹이다.

파장은 컸다. 정의연뿐만 아니라 공익법인 전반의 회계 투명성에 대한 의심으로 번졌다.

정의연 논란은 숙제를 던졌다.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을 어떻게 해야 확보할지다. 이는 각종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정의연에 대한 의심이 해소된다고 풀린 문제가 아니다. 또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처벌로 그칠 문제도 아니다.

공익법인의 회계부실 개선은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 시민사회 단체 전반에 주어진 숙제가 되었다.

◇회계 부실에서 시작된 정의연 의혹

정의연과 관련한 의혹은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92)가 피해자 지원단체의 기금운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불거졌다. 이 정의연 등의 단체에서 거둬들인 기부금이 정작 피해자들에게 전해지지 않거나 적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정의연은 할머니에게 직접 지급한 성금 영수증을 공개하며 피해자들에게 지원한 돈이 적었다는 주장에 반박했다. 최근 3년(2017년~2019년)간 일반 기부금 수입 중 목적기금으로 사용처가 있는 금액을 뺀 22억1965만원 중 피해자 지원 사업비로 사용된 금액은 9억1145만원으로 비중이 41%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의연은 자신들의 단체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단순히 기부금을 전달하는 단체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연구, 홍보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라고 설명하며 이런 사업을 위해서도 기부금이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정의연이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한 결산서류 내용들이 부실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정의연은 회계를 작성하면서 사업수혜자의 숫자를 999, 9999 등의 임의의 숫자를 적거나 수천만원의 기부금을 지출하면서 가장 사용처가 큰 1곳의 이름만 기재하는 회계오류를 범했다.

더불어 정의연은 공시 서류를 작성하면서 국고보조금을 누락하는 등 회계 곳곳에서 부실함이 드러났다.

정의연의 회계 문제가 불거지자 일각에서는 공익법인들이 자체적인 감사만을 시행하고 전문적인 외부 회계감사를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익법인 평가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9663개(2018년 기준)의 공익법인중 외부 외부 회계감사를 받지 않는 법인 수는 5849곳으로 60.5%에 이르렀다.

정의연은 회계부실 논란이 빚어지자 자신들의 전문 인력이 부족해 실수가 있었다며 외부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기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공익 제보 창구 만들고 인증 시스템 만들어야

공익법인 쪽에서 내세우는 회계 투명성 확보 방안으로는 정의연도 택한 외부감사 도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의 여력이나 규모를 볼 때 현실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전반적인 외부 감사가) 직관적으로는 있어 보이기는 하나 주식회사의 경우에도 이런 영세한 규모면 이 정도의 감사를 받지는 않는다”며 “전체적으로 외부감사를 하는 것이 답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안으로는 공익제보제 활성화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해법으로 내부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내부 고발자들이 외부에 사정을 알리고 정화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횡령의 경우 내부 고발자 아니면 발견하기 어렵다”라며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신고 채널이 활성화하지 않고 있어 내부 직원이나 기부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국세청을 중심으로 한 정부가 모든 일을 할 것이 아니라 현재 공익법인들의 투명성을 평가하고 인증을 할 수 있는 민간 차원의 단체를 만들어 기부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공익법인들의 투명성을 인증하는 민간 인증기관인 ‘글라스포켓’에 1600여개의 법인의 각종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기부자와 공익법인 소통할 수 있게 낡은 제도 바꿔야

낡은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30여년간 비영리단체의 감사를 전문적으로 맡아온 최호윤 회계사는 현재 공익법인들이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하게 되어 있는 결산서류 양식 등이 너무 복잡하고 낡아 기부자나 공익법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연에서 불거진 회계 논란에 대한 언론의 문제 제기는 대부분 이 결산서류들이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다는 데서 시작됐다.

최 회계사는 국세청이 요구하는 양식 중 ‘재산 대비 주식의 비중’ 같이 기부자들이 관심이 없는 정보들을 게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정보들은 국세청이 따로 받고 오로지 기부자와 소통하기 쉬운 방향으로 기부자도 이해하기 쉽고 단체도 작성하기 쉬운 방식으로 양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먼저 최 회계사는 기부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기부한 사업에 기부가 얼마나 됐는지’라며 기부자가 용도를 지정하지 않는 일반 기부금과 용도를 지정한 지정기부금이 구분돼서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 회계사는 “기부자가 낸 돈이 어떤 목적별로 구분되서 관리되고 있고 이런 것이 분산된 것이 아니라 총괄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라며 기부자가 ‘내가 낸 돈이 여기 가 있구나’하고 결산 내역을 보면서 후원금이 목적대로 잘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 회계사는 공익법인들이 작성하는 결산 보고서의 형식이 쉬운 방식으로 통합될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계사는 “예를 들어 사회복지법인이 기부금품법에 따라 모집등록을 하고 모금을 했다고 가정했을 때 3가지 보고서를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라며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부금을 모집해 사용하는 사회복지법인의 경우 일단 사회복지공동망에는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 규칙에 따라 보고서를 넣어야 하고, 기부금품법에 따라 행정안전부 사이트에도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국세청에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보고서를 넣어야 한다.

최 회계사는 “국가 부처마다 나뉘어 있는 양식을 하나로 통합하고 다른 부서가 가져가면 좋을 것”이라며 쉽고 공익법인들을 위해 편한 방식의 결산서류 등록 방법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년째 제기된 제도 문제 통합 관리 시스템 마련해야

열악한 공익법인의 현실과 낡은 제도 등의 문제로 공익법인들의 회계 관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다.

정의연 사태 이후 공익법인들의 회계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른 공익법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덕산 한국공익법인협회 회계사는 “정치적 이슈가 있고 인지도도 있는 (정의연 같은) 기관에서 행정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제도적인 지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정의연 사태는 예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계사는 기부금 배분 기관에서 200만원을 받은 공익법인이 사용내역을 증빙하기 위해 풀로 하나하나 붙인 영수증과 지출결의서를 300장이나 제출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제도와 행정의 인프라가 심각히 낙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회계사는 “그간 공익법인들과 관련된 법령이나 제도들이 각각 다른 부처에서 다른 목적을 갖고 만들어져왔다”라며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현실과 괴리가 있는 법령 제도의 개정을 요구하였지만 실제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회계사는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공익법인 공시서류는 해외에서 도입하며 번역이 잘못된 서식을 몇년간 사용해왔을 만큼 최근까지 보완을 하고 있는 서식이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김 회계사는 공익법인 회계에 관련해 실무자들이나 회계사들이 공식적으로 질의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공익법인을 관리하는 각 주무부처의 공무원들의 전문성도 떨어진다며 “권한 있는 기관이 만들어져 주무관청을 통합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익법인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통합기구인 ‘시민공익위원회’의 설립을 공약으로 내놓았지만 현재까지 추진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회계사는 낙후된 인프라와 무관심으로 공익법인 분야가 외면받고 있다며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규제와 감독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의 개선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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