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줄서기 없앤다”… 대출기관 분산하고 홀짝제 도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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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정부, ‘대출 병목’ 보완책 내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화면에 대기자가 93명이라고 표시돼 있다. 뉴스1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화면에 대기자가 93명이라고 표시돼 있다. 뉴스1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한 1000만 원 대출 신청에 출생 연도에 따른 ‘홀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대출 공급 창구도 신용등급에 따라 시중은행과 IBK기업은행으로 확대한다. ‘마스크 5부제’처럼 대출 수요를 분산해 소상공인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 돈을 빌려야 하는 불편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집행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해 12조 원을 긴급 수혈하겠다고 밝혔지만 행정처리 지연으로 현장에서 돈이 돌지 않자 보완책을 내놓은 것이다.

○ 시중은행-기업은행으로 대출 기관 확대


정부는 소상공인의 ‘줄서기’를 없애기 위해 금융기관별로 역할과 임무를 나누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전국 62곳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지역센터를 통해서만 대출이 진행되다 보니 대출 초기 단계부터 업무가 지연되는 ‘병목 현상’이 있었다.


다음 달부터는 신용등급에 따라 △1∼3등급은 일반 시중은행 △1∼6등급은 기업은행 △4등급 이하는 소진공 센터에서 대출이 진행된다. 신용등급이 높은 소상공인은 시중은행에서 수수료 없이 3000만 원 이하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은행이 소상공인에게 연리 1.5%로 돈을 빌려주고 정부로부터 시중금리와의 이자 차액을 받는 구조다.

1∼6등급 소상공인은 기업은행에서 3000만∼1억 원 한도로 보증대출을 받으면 된다. 단 보증수수료 0.5%가 붙는다. 음식, 숙박 업종은 기업은행이 직접 보증 접수부터 심사까지 진행해 3000만 원 한도로 대출하고 도소매업과 제조업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보증을 거쳐 1억 원 한도로 돈을 빌려준다.

시중은행은 점포가 많아 대출이 빨리 실행되지만 대출 기간은 1년으로 짧다. 반면 기업은행 대출은 상황에 따라 대출이 지연될 수 있지만 최장 8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연 1.5% 저금리가 적용되는 기간은 최대 3년이다.

소진공 센터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이 필요 없는 1000만 원 긴급대출(직접대출) 업무만 맡기로 했다. 300여 명의 인력이 하루 1만여 명의 소상공인을 상대하며 대출과 상담, 확인서 발급까지 모두 맡다 보니 업무가 지연된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접대출은 출생 연도에 따라 홀짝제를 적용해 하루 신청 수요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출생 연도가 홀수면 홀숫날에, 짝수면 짝숫날에 대출 신청을 할 수 있다.

수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7000만 원 한도의 일반 경영안정자금 대출은 사라진다. 소상공인 정책금융 업무를 맡는 소진공, 지역 신보, 기업은행 및 시중은행 임직원에 대해서는 고의·중과실이 아니라면 면책 규정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대출 업무를 처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 4월 말까지 업무 지연은 불가피


정부는 최대한 신속히 자금을 공급하겠다면서도 당분간은 업무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행 초기에는 신청 접수가 몰려 일반 보증대출은 처리 기간이 2, 3주 걸릴 것”이라며 “4월 하순이 돼야 신청 후 5일 내 대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소진공이 직접대출 업무만 맡게 돼 1000만 원 이상 대출 수요가 한꺼번에 기업은행으로 몰릴 경우 대출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역 신보와 보증 심사를 나눠 하는 구조가 아니라 기업은행이 모든 심사를 도맡는 구조라 수요에 따라 지금과 같은 ‘보증 심사 정체’가 나타날 수도 있다.

정부는 당초 지역 신보의 보증 심사 쏠림을 막기 위해 대출액에 따라 기업은행과 지역 신보가 보증 심사를 나눠서 하도록 할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재원이 빠르게 소진되자 대출 한도를 3000만 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모든 보증 심사를 기업은행에 넘겼다.

신용등급 확인 단계에서부터 혼잡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 기관이 달라지기 때문에 소상공인은 자신의 정확한 신용등급을 알아야 헛걸음을 피할 수 있다. 정부는 소진공 센터 외에 ‘나이스 평가정보’ 홈페이지(www.niceinfo.co.kr)에서도 신용등급을 확인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 수요자의 상당수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이어서 센터를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한도가 낮아져 기존 신청자와 신규 신청자 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이미 접수된 경영안정자금 대출한도를 7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낮추고 신규 대출은 3000만 원 한도로 제한하기로 했다. 반려동물 매장을 운영하는 서모 씨(44)는 “이달 중순 7000만 원을 신청했는데 2000만 원밖에 대출을 안 해주면 나머지 5000만 원은 대체 어디서 빌려야 하느냐”고 했다.

세종=남건우 woo@donga.com·송충현 기자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소상공인 대출#정부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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