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500대 기업 조사
경제전망 불투명-고환율 등 이유
“관세 리스크 파악 이후 수립” 25%
“보조금 확대 등 정책지원 필요” 지적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A사는 12월 들어서도 2026년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통상 11월까지는 다음 연도 경영계획을 세우지만, 올해 경영 변동성이 유독 컸기 때문이다. 미국발 자동차 관세 부과 타격에 더해 이자 비용과 전기료 부담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A사 대표는 “지금은 현상 유지하기도 빠듯한 상황”이라며 “내년 투자액은 ‘제로(0)’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10곳 중 6곳이 불투명한 경제 상황 등의 이유로 2026년 투자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보조금 확대와 규제 개선 등 기업 투자를 추가로 늘릴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기업 59% “내년 계획 못 세워”
7일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6년 투자계획에 따르면 응답에 나선 110개 기업 가운데 59.1%가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하거나(43.6%) 투자계획이 없다(15.5%)고 답했다. 연말에 가까운 지난달 24일까지 주요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였지만 상당수 기업이 경영 측면에서 ‘시계 제로’ 상태인 것이다.
이들은 “관세 등 리스크 파악 이후 수립하겠다”(전체의 25.0%)거나 “경제전망이 불투명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18.8%) 등 외부 환경 때문에 경영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응답을 상당수 내놨다. 올해 좋은 실적을 올린 B사 관계자는 “올해 업황은 괜찮았지만 내년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할 생각은 없다”며 “지금 상황을 최대한 유지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투자를 줄이거나 아예 투자계획을 세우지 않는 기업들은 가장 큰 이유로 ‘부정적인 국내외 경제전망’(26.9%)을 꼽았다. 이어 △고환율(19.4%) △내수시장 위축(17.2%) △관세 등 미국발 불확실성(12.9%) 등의 응답이 나왔다.
국내 대기업들은 내년에 생길 수 있는 주요 경영 리스크로는 글로벌 보호무역 확산(23.7%)과 주요국 경기 둔화(22.5%), 고환율(15.2%), 금융시장 불안(9.1%) 등을 꼽았다. 상당 부분이 투자를 줄이는 이유와 겹친다. 철강업체인 C사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전략 회의까지 마쳤지만 내년도 경영계획은 수정할 폭이 넓을 것으로 본다”며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어 통상 문제를 더 민감하게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년 경기 향방에 대한 신중론은 더 확산되는 추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같은 날 펴낸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느린 회복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특히 건설 투자의 빠른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3대 위험 요인으로 2차 글로벌 관세전쟁,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종결, 가계 구매력 한계를 지목했다.
● “국내 투자환경 개선 나서야”
산업계에서는 지금처럼 향후 경기가 시계 제로인 상황에선 기업 투자를 장려할 촉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500대 기업은 국내 투자의 애로 요인으로 세금 및 각종 부담금 부담(21.7%)을 첫손에 꼽았다. 이어 노동시장 규제(17.1%), 인허가 등 투자 규제(14.4%)가 주요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모두 국내에서 정책 변화 등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기업들은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세제 지원과 보조금 확대, 내수 활성화, 환율 안정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기업들이 글로벌 차원의 경영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국가”라며 “이런 상황에선 정부가 국내 기업 환경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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