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나올 증인 미리 불러 檢 진술조서 작성…대법 “증거로 못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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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23일 06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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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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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항소심에서 증인신문이 예정된 사람을 일방적으로 미리 불러 조사해 작성한 진술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이렇게 작성된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의 법정진술을 근거로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파이시티’ 브로커 이동율씨(61)는 대법원에서 무죄취지 판결을 받아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1년6개월과 4억원 추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항소심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불러 작성한 진술조서는 피고인 동의 없이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검사가 공소제기 뒤 참고인을 불러 작성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조서’를 재판에 증거로 낼 수 있게 하면, 검사가 수사기관 권한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법정 밖에서 유리한 증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이는 당사자주의·공판주의·직접심리주의에 반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덧붙였다.

이후 참고인이 항소심 재판에서 해당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의 법정진술을 하더라도 “그 신빙성(증명력)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고향 후배인 이씨는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알선 명목으로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2007년 8월~2008년 5월, 6차례에 걸쳐 총 5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이 전 대표에게 ‘최 전 위원장을 통해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이씨에게 이 돈을 자유롭게 처분할 권한은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 전달자’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2007년 12월 대선 이후엔 최 전 위원장과 무관하게 독자적 로비 명목으로 4억원을 받은 것이라고 유죄를 인정, 1심을 깨고 징역 1년6월에 4억원 추징을 선고했다.

이같은 2심 판단엔 이씨에게 돈을 준 이 전 대표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전 대표를 항소심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었던 검찰은 첫 공판기일 하루 전 그를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조서(제5회)를 작성했다. 이튿날인 2012년 12월14일 증인으로 나온 이 전 대표는 이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의 법정진술을 했다.

2심은 검찰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법정증언은 증거법상 문제가 없다며 유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해당 진술조서와 항소심 법정증언은 모두 증거로 쓸 수 없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검사가 공판기일에 증인신문할 수 있는 사람을 수사기관에 소환해 일방적으로 진술조서를 작성했고, 이 전 대표의 법정진술이 이전의 검찰 진술조서, 이씨의 검찰 자백진술과 내용이 모순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 전 대표가 원심 법정에서 진술하기 전 검찰 조사를 받고 진술조서가 작성되는 과정에 수사기관 영향을 받아 이 사건 공소사실에 맞추기 위해 진술을 변경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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