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휩쓴 자리엔 시름과 잿더미만…“몸만 빠져나와 살길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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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5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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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라도 건질까 돌아가 보니 살던 집이 사라졌어”
속초 주민들 “당장 생계 어떻게…농사도 짓기 어려워”

5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 위치한 산불 피해 민가에서 소방대원들이 잔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2019.4.5/뉴스1 © News1
5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 위치한 산불 피해 민가에서 소방대원들이 잔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2019.4.5/뉴스1 © News1

“겨우 몸만 빠져나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목숨은 건졌지만 살길이 막막하네요.”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임시대피소에 거처를 마련한 이재민들은 깊은 한숨에 이어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시름 가득한 하소연이었다.

전날 밤 발생한 산불로 강릉 옥계면 거주자들은 순식간에 보금자리를 잃었다. 5일 현재 강릉지역에만 1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인근 초등학교와 마을회관 등 대피소로 이동했다.

옥계면 천남리에 거주 중인 김영자씨(70)는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외투만 걸친 채 서둘러 집밖으로 나왔다.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이 이틀째 계속된 5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민가들이 불에 탄 채 부서져 있다. 2019.4.5/뉴스1 © News1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이 이틀째 계속된 5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의 민가들이 불에 탄 채 부서져 있다. 2019.4.5/뉴스1 © News1

김씨는 “가만히 있다가는 타죽겠다 싶어서 뛰어나왔다”며 “겨우겨우 빠져나왔다가 짐이라도 조금 건질까 해서 다시 돌아가 봤는데 1시간 반 만에 집이 완전히 다 탔다”고 울먹였다.

대피 당시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쳐나오는데 열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불길이 잡히고 놀란 가슴이 다소 진정되자 살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에 다시 애가탔다.

김씨는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피소를 찾자 눈물을 터뜨렸다. 김씨는 “우린 다른데 가서 살 수가 없다”며 “살던 데서 살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총리는 “정부에서 최선을 다해 복구하고 지원하겠다. 마음을 굳건하게 잡수셔야 한다”며 위로했다.

옥계면 남양리에 거주하는 강송주씨(76)도 “불이 난다고 해서 밖으로 나와보니 주먹만한 불똥이 날아다니고 연기도 시꺼멓더라”면서 “불똥 맞으면 죽을 것 같아서 밭으로 가 엎드려 기어나오다시피했다”고 털어놨다.

4일 오후 11시46분쯤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불은 강풍까지 겹치며 무섭게 번지며 산림 110㏊와 주택을 집어삼켰다.

불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재밖에 남지 않았다. 망상오토캠핑장과 펜션촌 망상웰빙휴양타운은 폭격을 당한 듯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1㎞ 밖까지 탄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화재가 컸던 이곳은 오후가 돼서도 소방차가 잔불을 정리하고 있었다.

휴양타운 내 잔디는 검게 그을려 잔디밭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건물 내부의 벽지와 차양막은 녹아내린 흔적만 남았다. 창문들이 깨져버린 방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화장실로 추정되는 위치에서는 수도관 물줄기가 끝없이 뿜어져 나왔고 일부 잿더미에서는 연기가 피어났다.

4일 발생한 산불로 인해 시꺼멓게 타버린 강원 동해시 망상웰빙휴양타운. 백사장 너머 쪽빛 바다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 뉴스1
4일 발생한 산불로 인해 시꺼멓게 타버린 강원 동해시 망상웰빙휴양타운. 백사장 너머 쪽빛 바다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 뉴스1

초록빛을 띄는 바닷가 너머로 새까맣게 탄 현장의 모습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동해에서 줄곧 거주했다는 이명주씨(70)는 “이곳과 오토캠핑장은 동해시 명소인데 다 불에 타버렸다”면서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눈물밖에 안 나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성에서 발생한 불이 옮겨붙은 속초에서는 화마가 평화롭고 작은 마을 하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장천마을을 덥친 화마는 20여 가구를 태우고 지나갔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한 단독주택은 유리가 다깨지고 창문도 녹아 거실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마을에서 만난 탁병희씨(39)는 “어릴 적 이곳에 살다가 23살에 대전으로 나왔고 지금 이곳에는 삼촌만 살고 계셨다”며 “TV를 보고 놀라서 급히 올라왔는데 어릴적 살던 집이 다 타버려서 착잡하다”고 안타까워했다.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져 동해시 망상오토캠핑리조트가 전소됐다. 소방대원들이 망상오토캠핑장에서 잔불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2019.4.5/뉴스1 © News1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져 동해시 망상오토캠핑리조트가 전소됐다. 소방대원들이 망상오토캠핑장에서 잔불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2019.4.5/뉴스1 © News1

마을입구에서 식자재 창고를 운영하고 있는 장재훈씨(47)는 화재로 창고가 전소되자 넋을 놓았다. 철판으로 이뤄진 식자재 창고는 화재 열로 녹거나 구겨졌고 철근기둥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창고 안에 있던 음료수병들은 꼭지가 모두 터졌으며 페트병들은 서로 엉겨붙었다.

장씨는 “1억500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며 “앞으로 수입이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거주 중인 엄기봉씨(67)도 농사가 걱정이다. 엄씨는 “농사를 지어야할 땅이 불을 다 먹었다”며 “다 갈아 엎어야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속초시와 고성군, 강릉시와 동해시는 우선 임시거처를 마련해 이재만에게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지자체는 조속히 컨테이너를 마련해 가구별로 지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자체는 이번 주말까지는 임시거처를 비롯해 향후 이재민 수용 방안을 최종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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