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애로 상담회장서 ‘치맥파티’… ‘시의원 등 VIP 의전 강화’ 공문
초미세먼지에 야외 행사로 빈축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지난달 26일 열린 대구시의 기업애로해결 박람회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롯한 주요 내빈들이 VIP 라인투어 도중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있다. 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
대구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마련한 각종 행사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행사 취지보다 ‘높으신 분’ 의전에 신경 쓰는 행태가 속출해 주객이 전도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달 26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는 ‘기업 애로 해결 박람회’가 열렸다. 대구시가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운 지역 기업의 고민을 한곳에서 한번에 해결해 주겠다며 마련한 자리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 이재하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지역 각종 기관장, 단체장과 시의원 등 지역 유력 인사 약 80명이 출동했다.
문제는 이날 행사가 기업인보다 이들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는 빈축을 샀다는 것.
주최 측은 이들 주요 내빈에게 행사장 각 부스를 설명해주는 ‘VIP 라인투어’를 벌였다.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이끄는 라인투어가 1시간가량 이어지면서 행사장 곳곳에서 열리던 각종 프로그램 진행이 차질을 빚었다. 중소기업 지원정책 설명회와 현장 채용 박람회, 스타기업 실무자 상담 등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부스마다 VIP가 언제 방문할까 대비하느라 분주했다. 수행원들도 VIP의 동선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더 어수선해졌다. 한 대학 부스에서는 이들이 다가오자 부랴부랴 가상현실(VR)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더 꼴불견인 것은 라인투어 도중 벌어진 ‘치맥(치킨+맥주) 파티’였다. 내빈들은 행사장 중앙 쉼터에 모여 주최 측이 제공한 치킨과 맥주를 즐기며 연신 건배를 했다. 이를 지켜보던 모 기업인은 “기업들은 힘들어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기업 애로 풀어주겠다는 박람회에서 치맥 파티라니 말이 되느냐”며 쓴소리를 했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달 시가 주관하는 행사는 물론이고 민간 행사에서도 시의원을 위한 의전을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각 부서와 산하기관에 보내 논란을 키웠다. 실제 이날 박람회 개막식에서 시의원들을 소개할 때 사회자는 공문에 적시된 대로 ‘시민 속으로 한 걸음 소통하는 민생의회’라는 시의회 슬로건을 앞세웠다.
대구시 관계자는 5일 “박람회 당시 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의전을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과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는 초미세먼지(PM2.5) 주의보가 발령된 날 어린이들을 데리고 야외 행사를 벌여 물의를 빚었다. 지난달 21일 동구청 앞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에는 관내 민간어린이집 원생 200여 명이 참여했다. 아이들은 율동을 하고 직접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배기철 동구청장과 구의원도 다수 참석해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9시부터 대구 전역에는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다. 행사가 열린 오후 2시 동구 신암동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m³당 48μg(마이크로그램)으로 ‘나쁨’ 수준이었다. 행사는 약 20분 만에 끝났지만 준비와 정리 시간을 포함하면 어린이들은 1시간가량 초미세먼지에 노출됐다. 동구 관계자는 “민간어린이집 단체가 주최했고 당일 초미세먼지 농도가 야외활동을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해서 행사를 진행했다”며 “아동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기념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 벗었다”고 해명했다.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은 “지자체가 보여 주기식 행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같은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본래 취지와 목적에 맞게 행사를 기획해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