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불법 대리주차… 앞차 시간 끄는새 줄행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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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저녁시간 단속현장 가보니
음식점 인근 도로변 차량 빼곡… 상가서 전문 파킹업체와 계약
인도까지 점령해 조직적 불법주차… 단속 피하기 꼼수에 개선 안돼

서울시 교통지도과 소속 주차단속 요원들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로 인근 식당 앞 도로에서 불법 주차 단속을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단속이 시작되자 ‘주차 아저씨’들이 차량을 옮기기 위해 뛰어가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시 교통지도과 소속 주차단속 요원들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로 인근 식당 앞 도로에서 불법 주차 단속을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단속이 시작되자 ‘주차 아저씨’들이 차량을 옮기기 위해 뛰어가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일 오전 11시 50분경 서울 강남구 도곡로의 왕복 6차로 도로 앞. 도로변에 고급 외제 승용차부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20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신호가 바뀌어도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알고 보니 도로 앞의 한 냉면집을 찾은 손님들이 불법 주차한 차량들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님들이 세웠다고 하기에는 불법 주차 수법이 정교했다. 번호판을 가리기 위해 앞뒤 차량을 손가락 하나 간격으로 바짝 붙여 세웠다. 트렁크를 열어 뒤차 번호판이 찍히지 않도록 하거나 주차가 아닌 것처럼 비상등을 켠 차량도 있었다.

“이게 다 수법입니다. 이동용 카메라 등의 단속 방식을 다 꿰고 거기에 대응하는 거죠.”

현장에서 만난 김윤모 서울시 교통지도과 동남지역대장이 말했다. 확인 결과 불법 주차를 한 것은 연두색 조끼를 입은 ‘주차 아저씨’들이었다. 이들은 식사 시간대 차량이 몰리면 운전자들로부터 키를 받아 도로변에 세우는 일을 한다.

○ 앞에서는 ‘굽실’, 뒤에서는 ‘줄행랑’

10분 뒤 김 대장의 지시를 받은 주차단속요원 4명이 현장을 급습했다. ‘주차 질서 확립’ 조끼를 본 ‘주차 아저씨’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당 중 한 명이 단속요원들 앞으로 황급히 뛰어와 인사를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곧 빼겠습니다.” 그러나 단속 요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과태료 부과 및 견인 대상 차량’ 종이가 차량 앞 유리 와이퍼에 끼워졌다.

단속요원들이 ‘주차 아저씨’들을 본체만체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남자가 사과를 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동료들이 이미 뒤에 서 있던 차량을 몰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날 단속 실적은 5대에 그쳤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와 요령은 더욱 다양하다. 단속요원 김용근 씨(64)는 “어떤 때는 덩치가 큰 사람이 달려와 자동차 보닛을 ‘쾅쾅’ 내리치며 시비를 건다. 죄다 나머지 차들이 도망치도록 시간을 벌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조직·상습 불법 주차’와의 싸움

발레 주차 업체들은 주로 식당이나 상점으로부터 한 달에 수백만 원의 돈을 받는다. 별도로 손님들에게서 1000∼3000원을 더 받기도 한다. 정해진 주차 구역 대신 도로변이나 이면도로에 불법 주차를 일삼아 통행을 방해한다. 식당 입장에서는 주차장을 구하기가 마땅치 않아 업체를 고용하고, 차주에게 부과되는 과태료도 몰래 대납해준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단속 대상(6차로 이상 도로)인 지역 가운데 조직적·상습적인 불법 발레 주차가 일어나는 곳은 171곳이나 된다. 이 중 162곳이 이른바 ‘강남 4구’에 집중돼 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자치구 관할인 곳까지 합하면 동남지역대에만 486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이를 “보도나 차도를 불법 점유해 영업장소화(化)하는 문제적 행위”로 규정하고 7월 말부터 단속 인력 208명 전원을 투입해 집중 단속에 들어갔다. 단속 인원도 기존 2인 1조에서 4∼8인 1조 등으로 다변화하고, 지역대별로 근무 체계도 개편했다. 대상은 음식점뿐만 아니라 유흥업소, 수입차 전시장 등을 포함한 206개 장소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영세 업체보다는 대형 업소, 일시적인 곳보다는 상습적인 곳을 중심으로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불법주차#대리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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