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개편, 공론화 결정땐 타당성 낮아”

  • 동아일보

‘공론조사’ 창시자 美 피슈킨 교수
정부가 전적으로 결정권 가진 신고리 원전 재가동과 달리
대입 문제는 대학 선택권 고려해야

제임스 피슈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공론화로 결정한 대입 정책은 타당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한국에서 언론과 인터뷰한 건 처음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제임스 피슈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공론화로 결정한 대입 정책은 타당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한국에서 언론과 인터뷰한 건 처음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신고리 원전 재가동과 대학 입시 문제는 다릅니다.”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공론화 과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공론조사’의 창시자 제임스 피슈킨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교수(70)가 19일 한국을 찾았다.

1988년 공론조사를 처음 고안한 피슈킨 교수는 스탠퍼드대 ‘숙의민주주의센터(CDD)’ 센터장을 맡고 있다. 이 센터는 지금까지 27개국 민관 주도의 공론조사에 직간접적으로 참가해 왔다. 피슈킨 교수는 이날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숙의민주주의 학문적 논의·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방한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지난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 재가동을 공론조사로 결정한 데 이어 현재 대입 개편을 위한 공론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슈킨 교수는 공론조사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라고 했다. 그는 “통상 대다수 국민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매하다고들 하지만 충분하고 균형 잡힌 정보가 제공된다면 충분히 똑똑하다. 여론조사는 생각하지 않는 국민의 의견을 측정하지만 공론조사는 충분한 정보와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뒤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미리 원하는 결과를 선택하도록 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대입 개편안을 공론조사로 정하는 게 적절한지 물었다. 찬반만 정하면 되는 신고리 원전 때와 달리 경우의 수가 많고 복잡한 대입 개편안을 비전문가인 시민들에게 맡기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피슈킨 교수는 “몽골에서도 복잡한 개헌 문제를 공론조사로 결정했다. 일반 국민도 어려운 이슈를 충분히 제대로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다”며 “다만 얼마나 잘 준비하고 균형된 정보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해관계가 있는 학부모나 교사가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 대입 개편안을 묻는 것도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교육은 국가 경제는 물론 사회 역동성, 미래와도 관련 있는 공공 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론조사 결론을 그대로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피슈킨 교수는 “신고리와 달리 대입은 정부가 전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안이 아니다. 대학의 자율에 맡길 수도 있다는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론화로 결정된 정책이 신고리 원전보다 타당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공론조사 대상에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수능 전형 간 비율이 포함돼 있어 대학의 선발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는 대입 개편 공론화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조언도 했다. “신고리 때에는 찬반 외에 무응답을 없앴다. 선택을 강요하는 건 공론조사의 취지에 맞지 않다”며 “대입 공론화에서는 이런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20일 국가교육회의 대학입시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학생생활기록부와 수능 간 적정 선발 비율 △수능 절대평가 상대평가 △수시 수능최저학력 기준 폐지 여부 등 3가지 쟁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론화할지를 발표한다. 시민대표단 400명은 대입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토론을 벌여 8월 초까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어려운 걸 하는 데 남은 기간은 불과 50여 일이다.

김호경 kimhk@donga.com·조유라 기자
#대입개편#공론화 결정#타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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