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형병원 간호사 죽음…남자친구 “‘태움’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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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2월 19일 10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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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
1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일하던 20대 간호사 A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A 씨의 죽음과 관련 ‘태움’(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간호사들 사이에서 묵인되는 괴롭힘)이 원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A 씨의 남자친구라고 밝힌 B 씨는 18일 익명의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을 통해 “제 여자구의 죽음이 그저 개인적인 이유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간호부 윗선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싶다”고 밝혔다.

B 씨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날 오전 8시에 여자친구로부터 ‘나 큰일 났어. 무서워. 어떡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 말을 듣고 업무를 보던 저는 회사에 반차를 쓰고 여자친구를 보러 달려갔다. 병원 기숙사 앞에 도착해 기다리는데 멀리서 손을 벌벌 떨면서 다가오는 여자친구를 봤다”며 사고 전날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어 “2년 동안 만나면서 그렇게 무서워하던 얼굴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을 듣고 나서 느낌이 좋지 않아 아무래도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집에 데려다 주려고 했지만 여자친구는 저에게 ‘어머니께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너무 죄송하다’라고만 했다. 저랑 같이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저녁 시간에 um님(수선생님)과 프리셉터님(사수)을 보러 간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만나서 도대체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안심을 시켜주기 보단 또 혼냈을 것”이라며 “평상시에도 (여자친구는)저와의 대화에서‘출근하기 무섭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라고 했고, 아직도 제 핸드폰에 그 내용이 저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여자친구는 저에게 사수가 가르쳐 주신 것이 없고, 다른 간호사 분이랑 근무할 때는 많이 배웠다며 그렇게 자랑을 했다. (여자친구는)사수 분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하루에 3시간 씩 자며 공부하고, 살이 5kg가 넘게 빠졌다”며 생전 A 씨의 업무에 대한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표정이 나날이 우울해지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해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서 더욱 슬펐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간호사 관련 카페에 글도 남겨보고 지인들께도 여쭤봤지만 명확한 답은 없었고,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라고만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 그만 두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B 씨는 “(다음날)오전 7시경 기숙사에 가겠다는 여자친구를 데려다 주고 약 1시간 후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분한 목소리로 여자친구는 저한테 병원에 반납하지 못한 약이 있다고 했다. 이 약들은 아직 제 차에 있다. 제가 약을 받으러 갔을 때 여자친구는 약간 진정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많이 불안해 보였고, 이 때가 제가 여자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저는 슬픔보보다는 분노에 차있다. 장례식에서 본 분들, 위로하러 오셨던 분들께 모두 감사드리지만 여자친구를 힘들게 하고 무서움에 떨게 했던 사람들, 기계적으로만 여자친구를 대하고 아무런 가르침 조차 하지 않고 매서운 눈초리로만 쳐다보던 사수 간호사분. 어제 장례식장에서 제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표출해도 꿈쩍하지 않던 분 제가 기억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B 씨는 그간 ‘태움’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간호사 내 괴롭힘을 지적하며 “이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도와 달라. 가는 길 편하고 따뜻하게 보내주고 싶다”며 “여자친구만 힘든 일을 겪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간호사 분들도 힘드신 것 매우 잘 알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도와 달라”며 도움을 호소했다.

한편 이와 관련 해당 병원 측은 “확인 결과 (괴롭힘)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고인이 예민한 성격이라 오히려 더 신중하게 교육했다”고 해명했다.

김혜란 동아닷컴 기자 lastlea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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