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치매로 7살 되어버린 아내, 13년이나 보살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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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후 ‘7세 지능’ 된 62세 아내 치매까지 겹쳐
청소부 남편 출근 후 혼자 요리하다 화재로 질식사
추가요금 부담에 요양보호사 3시간 밖에 못 써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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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새벽 5시 환경미화원 최영우 씨(61·가명)는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곤히 잠든 아내(62·여)를 내려다봤다. ‘오늘도 별 탈 없이 지나야 할 텐데….’ 최 씨는 잠든 아내를 홀로 두고 집을 나섰다. 불안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13년 전 아내는 갑작스런 사고로 ‘일곱 살’이 됐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뇌병변 3급 판정을 받았다. 지능은 7세 수준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혼자 밖에 나갔다가 넘어져 상처투성이로 귀가하곤 했다. 주민들이 건네주는 음식을 마구 집어먹어 탈이 난 적도 있다. 얼마 전 치매 판정까지 받았다.

아내가 쓰러진 뒤 1년 동안 최 씨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병간호에 매진했다. 하지만 식비와 병원비, 아내 기저귀 값을 대려면 일해야 했다. 그래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아내가 잠든 새벽에 나가 오후 6시에 귀가하는 일상을 13년 간 반복했다.


최 씨는 이날도 평소처럼 하루가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는 평소와 달랐다. 가스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잔뜩 둘렀다. 아내는 뇌병변 판정 후 직접 요리한 적이 없다. 이날은 냉장고에서 인스턴트 탕수육을 꺼낸 뒤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렸다.

최 씨는 “아내가 병을 얻기 전 솜씨 좋은 미싱사였다”라고 말했다. 손끝이 야무져 일감이 많았다. 바느질로 동생들 학비를 댈 정도였다. 결혼 후에는 남매를 키우느라 자기 몸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목수이던 최 씨의 일감이 줄어 부담은 더 커졌다. 아내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었지만 “약을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한다”며 치료를 미뤘다. 아내는 2005년 홀로 집에서 쓰러졌다. 이후 다시는 미싱 앞에 앉지 못했다.

10일 오후 1시 경 청소를 마치고 쉬고 있던 최 씨는 요양보호사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큰일 났어요. 아내 분이…. 당장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최 씨는 아내와 살았던 서울 동작구의 한 임대아파트로 달려갔다. 집 주변은 검게 얼룩져 있었다.

아내는 프라이팬 위로 불이 치솟는 것을 보고도 119에 신고하지 못했다. 아내가 아는 전화번호는 오직 최 씨의 휴대전화뿐이었다. 출동한 소방관은 “정수기 호스가 열기로 녹아내리면서 물이 쏟아져 불은 빨리 꺼졌다”고 했다. 하지만 대피 요령을 모르는 아내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다. 요양보호사 방문을 불과 몇 분 앞둔 시점이었다.

아내의 빈소에서 만난 최 씨는 “요양보호사를 충분히 오랫동안 곁에 있게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아내는 장기요양보험 3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보호사를 하루에 3시간밖에 부를 수 없었다. 추가로 부르려면 매달 수십만 원을 부담해야 했다. 그래서 최 씨는 청소부 일을 마치면 부리나케 귀가해 밥을 차리고 아내를 목욕시키며 13년을 버텼다. 최 씨는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아등바등 살았던 세월이 허무하다”고 했다.

송영찬 기자 chanson@donga.com
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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