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의 배 몰다가 이제 좋은시절 보내나 했는데”… 낚싯배 선장 시신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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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된 낚싯배 ‘선창1호’의 선장 오모 씨(70)의 시신이 사고 발생 나흘 만에 발견됐다. 오 씨는 5일 오전 9시 40분 경 인천 영흥도 용담해수욕장 남쪽 지점에서 발견됐다. 사고 지점에서 3.5km 떨어진 곳이다. 발견 당시 오 씨는 검은색의 얇은 패딩점퍼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구명조끼는 입지 않은 상태였다. 오 씨의 아들이 이날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확인했다.

인천 연평도 인근 섬 출신의 오 씨는 7살 무렵부터 부모님과 인천 영흥도에서 함께 살았다. 결혼한 뒤부터는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9년을 살았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평생 남의 배를 몰았다.

오 씨는 사고 당일 사실상 ‘선창1호’의 마지막 항해였다. 내년부터 아들과 함께 운항할 배를 제작 중이었다. 한평생 꿈꾸던 자신의 배였다. 오 씨의 지인은 “내년에 아들과 자신의 배를 함께 몬다며 행복해했다. 평생 고생하고 이제 겨우 좋은 시절을 보내나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 씨의 시신은 이날 경기 시흥 시화병원으로 옮겨졌다.

선창1호의 선원이자 조리원인 이모 씨(41·여)의 발인식이 5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엄수됐다. 이 씨는 선창1호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선장을 도와 초보 낚시객들에게 낚시하는 방법을 세세히 알려줬다. 갓 잡은 물고기로 맛있는 요리를 해줬다. 이날 배에 탑승한 22명 가운데 유일한 여자였다.

이 씨의 빈소는 비슷한 시각에 발견된 다른 사망자들보다 뒤늦게 마련됐다. 이 씨의 가족들은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었다. 한국에는 이 씨 혼자뿐이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이 씨 가족들은 서둘러 귀국하고 싶었지만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었다. 사고 발생 반나절이 지나서야 어렵게 비행기 표를 구했다. 그마저도 좌석이 없어 가족이 비행기 두 대를 나눠탔다.

이 씨는 ‘낚시 하는 플로리스트’였다. 서울에서 꽃집을 운영하다 우연히 시작한 낚시에 빠졌던 것이다. 이 씨는 이날의 낚시를 마지막으로, 낚시와 꽃집 운영을 정리하고 가족들 곁으로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낚시 하느라 마련했던 영흥도 집도 처분했다. 유족들은 “이제 같이 살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이 씨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의 3분의 1은 장애아동을 돕는 봉사단체의 활동가들이었다. 이 씨는 생전에 장애 아동 등 소외계층을 돕는 자원봉사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봉사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라 전혀 몰랐다. 찾아오는 조문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혼자서 많을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낚시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말했다.

영흥도=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인천=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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