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놀러가도 이젠 못믿어” 집주소-휴대번호 적는 엄마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6일 03시 00분


어금니 아빠-인천 초등생 사건후 “친구도, 그의 부모도 안심 못해”
집 대신 쇼핑몰 만남 추천하기도

살인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영학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13일, 경기 수원의 중학생 학부모 손모 씨(45·여)는 같은 반 부모 10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단톡방)에 엑셀 파일을 올렸다. 자녀가 속한 반 학부모 연락처를 한데 모은 것이었다. 손 씨는 “우리 반에 이영학 같은 부모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생각으로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단톡방에서 다른 학부모들도 “불쾌해 말고 대비하는 마음으로 공유하자” “이영학이 사는 곳만 알았어도 피해 학생은 살 수 있었다”며 호응했다.

이영학이 여중생인 딸 친구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학부모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초등학생을 집으로 유인해 잔혹하게 살해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에 이어 이영학의 만행까지 만천하에 드러나자 불안감이 더욱 커진 것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선 자녀 친구와 친구 부모도 불신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자녀가 친구 집을 방문하는 일은 ‘경계 1순위’가 됐다. 김모 씨(42)는 이날 초등학교 6학년 막내딸과 중학교 3학년 큰딸 모두에게 평소 어울리는 친구들 이름과 집주소를 적으라고 했다. 김 씨는 “막내딸이 주말이라 친구네 놀러간다고 했는데 놀겠다는 것을 막을 순 없고 그 대신 집주소를 적어놓고 가라고 했다. 중학생인 딸도 불안해서 적어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일부 부모는 자녀에게 같은 반 친구들 부모 직업 등 신원까지 알아보라고 독촉하는 사례도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친구네 집 대신 영화관 쇼핑몰 등 공개된 장소에서 놀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일수록 불안감이 더욱 크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김영훈 씨(40)는 “자녀 친구들 얼굴을 보려고 일부러 주말에 불러 밥을 사줬다. 얼굴이라도 익혀두면 불안감이 해소될 것 같아서였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 사는 박모 씨(35)는 “어제 딸이 친구네 놀러 간다고 하기에 그 친구가 누구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용돈을 많이 줄 테니 영화관을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일부 아버지는 딸이 동성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못하도록 하거나, 딸 친구들이 집에 오면 아예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직장인 민모 씨(45)는 “오해 살 일을 애초에 만들고 싶지 않아 딸들에게 가급적 밖에서 놀라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이러한 불안감이 자녀의 교우 관계 형성이나 사회성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조은경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모의 불안이 자녀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자칫 아이들에게 친구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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