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성 따랐는데… 애들이 놀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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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다문화 자녀들, 비현실적 姓등록 규정에 눈물

최근 세 살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주부 박모 씨(30)의 가슴앓이가 시작됐다. 아들의 이름이 불러온 오해 탓이다. 리준서(가명). 아이의 성씨(姓氏)를 본 다른 아이와 부모들은 “쟤, 북한에서 왔나봐”라며 수군거렸다. 박 씨 아들의 성이 ‘리’로 등록된 이유는 남편이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2013년 대만 출신 리(李) 씨(33)와 결혼했다. 혼인신고 때 ‘외국인 이름은 현지발음을 한글로 쓴다’는 가족관계등록예규에 따라 남편의 한글 성씨를 ‘리’로 등록했다. 아빠 성을 따른 아들도 똑같은 성씨를 쓰게 됐다. 박 씨는 “성씨를 개명할 수는 없어 답답할 뿐”이라며 “아이가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대만 등 중화권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 여성은 아이가 자라면 이처럼 난처한 상황을 겪는다. 대부분 성씨가 중국과 한국 발음이 다른 탓이다. 발음이 같은 건 황(黃) 정(鄭) 왕(王) 등 소수다. 중국인 허우(候·후) 씨와 결혼한 A 씨의 아이 이름도 ‘허우민수’(가명). A 씨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남녀평등 차원에서 부모의 성씨를 각각 따온 것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중국인 천(陳·진) 씨와 결혼한 B 씨는 아이 성씨를 천으로 등록했다. 남편의 성씨를 진 씨로 알던 일부 이웃은 아이 아버지가 다른 사람인 걸로 오해했다.

엄마 성씨를 따라도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 대만인 쉬(許·허) 씨와 결혼한 C 씨는 아이가 태어나자 자신의 성씨를 붙여 출생신고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주변에서는 ‘미혼모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저런 오해를 피하기 어려운 경우 아예 성씨와 이름 모두 중국식으로 짓는 사례도 있다. 대만인 커(柯·가) 씨와 결혼한 D 씨는 “중국 발음 그대로 성과 이름까지 썼다”며 “아예 국내 화교(華僑) 유치원과 학교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30일 대법원이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대만 홍콩 포함) 남성과 한국 여성으로 이뤄진 가정의 자녀 출생은 2008년 91명에서 계속 늘어 지난해 1132명을 기록했다. 2008년부터 올해 7월까지는 총 7297명이다. 이들은 해당 국가뿐 아니라 어머니를 따라 한국 국적도 갖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성씨를 선택한 경우 출생신고 때 대부분 현지발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한자를 한국 발음으로 등록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2003년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주소를 둔 동포를 제외하고 모두 현지발음으로 표기하도록 바뀌었다. 부모들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비현실적 규정 탓에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는 걸 안타까워하고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규정 개정을 촉구하는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2013년 대만 출신 외국인과 결혼한 고현정 씨(31)는 “한자의 발음이 문제가 아니고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며 “배타적 규정이 2세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관련 전문가의 의견 등을 수렴해 개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다문화 자녀#중화권#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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