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사고·외고 폐지…교육경쟁력은 포기하는가

  • 동아일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에 이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없애기에 나섰다. 어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의 23개 자사고와 6개 외고, 1개 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바꿀 방침을 이달 안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이 교육감은 자사고 2곳과 외고 8곳을 2019∼2020년 재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폐지하겠다며 “학교를 계층화, 서열화하는 정책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사고 지정과 재지정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지만 지정을 취소하려면 교육부 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조 교육감 등 진보 교육감들은 2014년에도 자사고 폐지를 시도하다 교육부 반대로 실패했으나 이번에는 뜻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을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일부 자사고와 외고의 경우 지나친 사교육을 유발하거나 입시학원처럼 운영돼 개선이 필요한 측면이 없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처하려면 주입식 교육 아닌 새로운 교육을 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사고의 전신(前身)인 자립형사립고는 고교평준화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도입된 제도다. 1998년 이해찬 초대 교육부 장관은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대학 무시험전형을 확대했지만 ‘단군 이래 최저 학력(學力)’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대치동 학원가를 키우는 후폭풍을 일으켰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EBS-수능 연계 등 사교육비 경감 대책 결과 학생들은 내신, 수능, 논술에 모두 대비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겪어야 했다.

결국 진보좌파 정부에서 하향 평준화한 학교 교육을 살리기 위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고교 다양화 정책을 모두 뒤집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이다. 여기에 수능·내신 절대평가제까지 도입하면 교육경쟁력이 추락해 사교육만 더 번창할 우려가 있다. 자사고·외고의 문제는 고쳐야 하지만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는 것은 현명한 백년대계라고 하기 어렵다. 세계가 인재 경쟁에 몰두하는 마당에 어느 정도 정착된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고 평등 교육으로 선회하겠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자사고는 학생 총 납입금의 3∼20%에 이르는 전입금을 매년 재단이 부담하고 기숙사 등 각종 시설에도 아낌없이 투자한 사학이다. 납입금이 비싼 반면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사회적배려 전형을 통해 ‘계층 사다리’의 역할도 해 왔다. 문 대통령과 진보 교육감들이 평등교육을 실현하겠다면 공교육의 질과 교육경쟁력은 어떻게 높일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이재정#조희연#자사고 폐지#외고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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