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인 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아파트에 걸린 조기(弔旗)가 빼곡하다(위쪽 사진). 같은 날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는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10곳 중 1곳 수준이었다. 안철민 acm08@donga.com·김예윤 기자
“옛날에는 태극기 거는 날이라고 하면 몸가짐도 조심했는데….”
서울에서 태극기 게양 운동을 펼쳐온 이경주 씨(69·태극기무궁화사랑회 총괄위원장)가 탄식하며 말했다. 그는 현충일을 앞둔 4일 깃대꽂이가 있는 주택마다 태극기를 걸었다. ‘원하지 않을 경우 연락 주면 회수하겠다’는 메모도 남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만난 30대 주민 3, 4명은 “왜 동의 없이 내 집 앞에 태극기를 거냐”며 이 씨에게 항의했다. 이 씨는 “‘태극기만 보면 짜증이 난다’고 하는 데 할 말을 잊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태극기를 향한 엇갈린 시선은 여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벌어진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본보 기자들은 현충일인 6일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단지의 조기(弔旗) 게양 실태를 살펴봤다. 지역별로 게양률도 차이가 났고 현장의 반응도 극과 극이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아파트는 게양률이 50%에 육박했다. 이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노년층 가구주가 많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하는 단체들에 따르면 통상 현충일 조기 게양률은 10% 안팎이다. 반면 30, 40대 가구주가 많은 마포구의 한 아파트는 393가구 중 단 2곳만 태극기를 걸었다. 0.5%에 불과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하숙자 씨(53·여·서울 강남구)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태극기에 대한 감정이 잠깐 변할 수는 있지만 애국심을 가진 국민이라면 당연히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주부 이모 씨(35·서울 용산구)는 “태극기 집회를 보며 반감이 심해져 현충일이지만 굳이 달고 싶지 않았다”며 “태극기를 달아야 애국은 아니지 않으냐”라고 되물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태극기 포비아’는 그나마 조금씩 줄어드는 분위기다. “태극기 게양 여부를 무조건 나라 사랑의 기준으로 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정치와 연계해 경시하는 것도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 한 온라인 쇼핑몰이 “탄핵 갈등 탓에 태극기 의미가 퇴색돼 안타깝다”며 태극기 문양을 넣은 제품을 공개하자 1200여 개의 ‘좋아요’를 얻었다. 또 현충일을 전후로 SNS에는 ‘태극기 게양 인증’이 1분당 3, 4개씩 게시됐다. 어린 자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태극기를 올리는 부모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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